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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푸르고 창백하고 연약한 [조용미]

by joofe 2022. 3. 6.

 

 

 

 

푸르고 창백하고 연약한 [조용미]

 

 

 

 

 

 

  빈소에서 지는 해를 바라본 것 같다

  며칠간 그곳을 떠나지 않은 듯하다

 

  마지막으로

  읽지 못할 긴 편지를 쓴 것도 같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천천히

  멱목을 덮었다

 

  지금 내 눈앞에 아무것도 없다

 

  당신의 길고 따뜻했던 손가락을 느끼며

  잡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이었으며 우리의

다짐은 얼마나 위태로웠으며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

마나 초라했는지

 

  푸르고 창백하고 연약한 이곳에서

 

  당신과 나를 위해 만들어진 짧은 세계를

  의심하느라

 

  나는 아직 혼자다

 

         - 당신의 아름다움, 문학과지성사, 2020

 

 

 

 

 

 

* 마음은 변화무쌍하다.

물론 금방금방 변하는 건 아니다.

오래오래 두고두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다가

멱목을 덮을만 하면 마음은 다르게 된다.

봄이 여름이 되고 여름이 겨울이 되었다가 다시 봄인가 했더니 가을이 되기도 한다.

깨지기 쉽고 깨진 마음을 다시 아물게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시 나를 들여다보면 또 초라해지기도 한다.

참, 푸르고 창백하고 연약한 마음이다.

작심 세시간은 좀 너무하고 희노애락의 부침 속에서

긴 편지를 쓸만한 계기가 생길 즈음 마음은 다시 작심하고 변한다.

 

내 마음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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