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네 국숫집 [장은숙]
간판은 없다
문 앞에 놓은 이 빠진 국수 사발에
봄부터 가을까지 키 작은 꽃이 피어나고
겨울에는 눈밥이 고봉으로 쌓이는 집
비법의 육수도 없다
날시 따라 계절 따라 간이 흔들리기도 하겠다
그날 판 첫 국수는
죄 없이 배고픈 이들의 몫으로 달항아리에 뗀다
마음이 마른 면같이 부서지는 날은
<주인장 노을 보러 갑니다> 써붙이고
저녁 장사 접는 날도 있다
허기보다 사람 고파 드는 손님
묻자 않아도 긴 안부 뽑아내면
경사慶事에도 조사弔詞에도 다 배불리 먹으라
국수사리 수북이 부조하는 주인
국숫물 다스리듯 마음 재우고
면이 익어가듯 늙어가면 되겠다
- 그 여자네 국숫집, 북인, 2019
* 국수, 칼국수, 수제비.
어릴 땐 참 많이도 먹었던 것들이다.
지금이야 워낙 먹거리가 많아서 아주 가끔 별식으로 먹는 것이지만
거의 주식처럼 먹었던 때가 있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국수에는 특별한 육수비법이 있었는데 그게 미원이었다.
가끔 먹방에서 연예인들이 아무도 모르게 슬쩍 국에 넣는 것이 라면 스프이듯이
어머니가 아무도 모르게 슬쩍,은 아니더라도 하얀 마법의 가루를 뿌리셨다.
국수중에는 김치말이 국수가 가장 맛있었는데
겨울에 땅 속에 묻은 항아리에서 살얼음 살짝 걷어내고 김치 한 포기와 김칫국물을 꺼내
김칫국물에 흰 설탕, 한 술, 후추 몇 꼬집 넣고 마법의 가루를 뿌리고
삶아 찬물에 식힌 국수를 넣고, 김치는 송송 썰어 그 위에 얹으면
최고의 맛, 김치말이 국수가 된다.
한겨울에 시원하게 한그릇 뚝딱하고 나면 윗니 아랫니가 딱딱 부딪히고
식구들은 까맣게 탄 아랫목에 깔아둔 이불속으로 발을 집어넣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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