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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가리봉동 61년 소띠 마귀순 씨 [박제영]

by joofe 2021. 10. 8.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가리봉동 61년 소띠 마귀순 씨 [박제영]

 

 

 

 

  아줌마, 8번에 갈비 2인분 추가요!

  아줌마, 뭐해 9번에 냉면 네 그릇이요!

  아줌마, 빨리 좀 닦아요 퇴근 안 할 거예요?

 

  그놈의 아줌마 소리,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 되어서야

  야간 식당 일을 겨우 끝낸 귀순 씨

  현관문을 열기가 무섭게

  배고파 밥 줘

  남편은 오늘도 밥타령이다

 

  여편네가 귀꾸녕이 막혔나

  밥 좀 달라니까

 

  에라 화상아

  에라 만득아

  차라리 귀신이나 되어서

  저 만득일 잡아묵을까 싶다가도

  불쌍한 저 만득이 내 없으면 또 어찌 살까 싶은 것이니

 

  여자가 공부하면 팔자가 드센 법이다 귀순이 니는 대학

같은 건 꿈도 꾸지 말고 그저 남동생들 뒷바라지만 잘하

면 된다 쫄딱 망해먹은 아버지, 망할 놈의 유언, 그래도 아

버지는 아버지요 유언은 유언이라, 일찌감치 대학 포기하

고 여상을 졸업한 마귀순 씨 은행에 취업해서 가장 노릇

하며 남동생들 대학까지 보냈는데, 싫다 해도 너 없인 못

산다며 일 년을 쫓아다닌 그 뚝심에, 탄탄한 중견 기업의 

대리에, 이만하면 되었다 싶어 가만덕 씨랑 결혼해서 아

들딸 낳고, 삼십여년 아무 탈 없이 잘 살았다는데,

 

  가리봉동 소갈빗집에서 불판을 닦고 있는 61년 소띠 마

귀순 씨는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걸까

 

  아줌마, 아줌마, 그놈의 아줌마

  언놈이 꿈속에서도 귀순 씨를 부르나

  아줌마 없다

 

           - 안녕, 오타 벵가, 달아실, 2021

 

 

 

 

 

 

 

 

 

* 가리봉동 산 2번지 두 칸짜리 반 지하방에 사는 가만덕 씨의 아내,

마귀순 씨는 아버지가 쫄딱 망하지 않았으면 분명 대학을 갔을 것이고 

교대를 나와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금쯤 초등학교 교장을 하고 있을 텐데

아부지 잘못 만나 여상을 가서 은행원이 되었다니......이런!

가만덕 씨가 중견기업 부장까지 하다 나온 걸 보면 못해도 서울에서 집 하나는 장만했을 텐데,

마귀순 씨가 은행원이었으면 돈 굴리는데는 귀재여서 이자 많이 주는 적금 들어

못해도 서울에서 집 하나는 장만했을 텐데,

환갑이 넘어 무슨 까닭으로 반 지하방에 살고 있을까? 저런!

 

박제영 시인은 소설을 써도 될 거다.

짧은 시 안에 두 사람의 인생을 축약하여 두 편을 썼으니 말이다.

왜 만득이도 없고 아줌마도 없는 것인지

왜 존재감 없이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세상에는 이런 류의 사람들이 참 많은 것이니

61년 소띠 마귀순 씨의 삶에 공감이 가는 것이다.

아들딸이 장가가고 시집 갔으면 뭐라도 보태줄 텐데 지들 앞가림하기도 바쁠 테니

불판을 닦을 수밖에 없다.

그게 인생이다. 마귀순 씨, 힘 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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