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접대 [이순남]
산 밑 수무골에 출장을 갔다
축사 주인 어디 가고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반긴다
음전한 황소들은 예를 다하는 듯 하나둘 일어서더니
맑은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새로 설치한 물통의 개수를 확인하고
사진도 찍고 소 숫자도 세어보고
나오는 길이 뭔가 아쉽다
얼굴이 넓적하고 어깨가 우람한 소들이
듬직한 장정처럼 느껴지는 것이
어느 전생에 저들과 둘러앉아 탁배기 한잔을 했을 듯도 싶다
축사를 나서니
강아지가 차까지 따라 나오고
나가는 내내 소들이 눈길을 떼지 않는다
주인 없는 축사
짐승들이 손님 접대를 한다
- 버릇처럼 그리운 것, 달아실, 2021
* 띄엄띄엄 있는 시골의 집들과 축사에 가면 주인이 아는 경우가 아닐 경우엔
잘 접대 받기가 어렵다.
대개는 뜨악한 표정으로 뭘 노리고 오는 걸까? 의심하는 눈초리로 살피게 될 게다.
실은 강아지도 낯선 이를 보면 경계를 할텐데
수무골 축사의 짐승들은 꼬리를 흔들거나 선한 눈빛으로 손님을 맞이해 주니
아마도 주인이 선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소들이야 워낙 듬직하기도 하고 맑고 선한 눈을 가지고 있으니 접대를 잘 할 게다.
강아지가 차까지 따라와 꼬리를 흔들어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
얌전한 소를 한번씩 쓰다듬어주고 싶네.
강아지도 양손으로 얼굴 만져주고 잘 있으라 말해주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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