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고명재]
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문 채로
그냥 대충 타면 된다고 했다
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
망해가는 유원지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
배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렸다
모터 소리와 함께 턱이 산에 걸렸다
쏠린 피가 뒤통수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원래는 저기 저쪽 해 좀 보라고 여유 있는 척
좋아한다고 외치려 했는데
으어어억 하는 사이 귀가 펄럭거리고
너는 미역 같은 머리칼을 얼굴에 감은 채
하늘 위에 뻣뻣하게 걸려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공포가 되었다
나는 침을 흘리며 쇠 봉을 잡고 울부짖었고
너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무슨 대다라니경 같은 걸 외고 있었다
삐걱대는 뱃머리 양쪽에서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갈 때 너는 민들레처럼
머리칼을 펼치며 날아가 버리고
네가 다가올 땐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뒷목을 핥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교회 십자가가 네 귀에 걸려 찢어지고 있었다
내리막길이 빨갛게 물들어 일렁거렸다
네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더는 바다가 두렵지 않다고
이 배는 오래됐고 안이 다 삭아버려서
더 타다가는 우리 정말 하늘로 간다고
날아가는 기러기의 등을 보면서
실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너를 보면서
눈 밑에서 해가 타는 것을 느꼈다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
- 2020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고명재 ; 1987년 생. 영남대국문과 박사 수료. 동 대학 시간강사 재직.
* 요즘 우리가 사는 게 바이킹을 타고 있는 것과 같다.
바이킹에서 내려와 평온함을 누리며 살아야 하는데 사는 게 녹록치 않다.
어느 시대에나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형편이 더 어려운 것이다.
생사를 가를만한 오래된 바이킹이 아닌 새로 만든 바이킹에서 안온함을, 아늑함을 느끼면 안 될까.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숨 막히는 때를 살고 있다, 지금.
캡틴도 정장을 차려입고 품위있게 바이킹을 잘 안내하며 때와 장소와 경우를 잘 살펴주면 좋겠다.
눈높이는 맞추되 캡틴의 정신으로!
** 삼십년전에 일본 출장을 갔다가 일본인들이 유원지에 가자고 해서 청룡열차를 타게 되었다.
타고 싶지는 않았지만 일본인에게 지고 싶지 않았고 표정을 감추고 탔다.
탈 때는 몰랐는데 이게 호수 위를 휙휙 지나가는데 참 무서웠었다. 표정 감추느라 혼났네! ㅋ
내가 싫어하는 세가지가 높은 것, 물 그리고 개.
원심력으로 돌아들 때는 호수 위에서 이런 개 같은......욕을 했었던.
그리곤 다시는 놀이기구를 타지 않았다.
*** 고명재 시인의 앞날에 비단길만 열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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