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사과나무 [김길녀 1964~2021]
ㅡ여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여자들
골짜기에 둥지 튼 여자네
사과밭 안 누옥에 모였네
그들에겐 고향, 몇 몇에겐 타향이었다가 고향이 되어버린
두꺼운 도시와의 인연
조금은 울다가 더 크게 웃고 있는
마흔 밖의 여자들
숨겨 놓은 열쇠와 열어둔 다락방
빈집 고요를 허락한 여자네 집
글자락으로 생을 파먹는 여자들
시간을 만지는 손길이 따뜻하다
누군가는 아주 길게
누군가는 조금 짧게
어느 계절
잡지라는 공간에 세 들어
문장이란 이름 빌려
길거나 짧았던 하루
다정한 안부로 풀어내리라
사과나무 잎사귀들 천천히
그려가는 달콤한 향기의 지도
여름비 내리는 둥근 지붕 위에
작은 깃발을 꽂고 왔다
-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월호
* 사과꽃이 피는 계절이다.
누군가 사과꽃을 주워들고 이게 사과꽃이야!라고 쫑알거렸다.
하얀 꽃이라고만 알고 있었으니 음, 그게 사과꽃이군! 무심하게 말했다.
하얀 꽃을 좋아하는 여자들이 사각사각 사과 베어무는 소리로
모여 노는 것 같은 사과밭 풍경.
언젠가 죽령 사과밭을 거닐다 시인중 한명이 낙과를 집어들고 깨물어 먹었다.
소심한 나는 낙과도 주인이 있을텐데 먹으면 어떡하냐 했더니
이런 건 먹어줘야 한다나.
여자들은 하얀 꽃을 좋아하고 남자들은 낙과를 좋아하는구나, 난 얼굴이 빨개졌다네.
사과꽃을 바라보며 꽃을 좋아했던 시인이 생각나고
낙과를 깨물어 먹던 시인이 생각난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안부를 묻는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을 들여다본다 [채호기] (0) | 2022.05.14 |
---|---|
오래된 의자 [신미균] (0) | 2022.05.14 |
바이킹 [고명재] (0) | 2022.05.10 |
푸른 옷의 여인 [강신애] (0) | 2022.05.10 |
천돌이라는 곳 [정끝별] (0) | 2022.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