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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오래된 의자 [신미균]

by joofe 2022. 5. 14.

 

 

 

 

 

오래된 의자 [신미균]

 

 

 

 

 

생각이 삐그덕 움직이자

쇠못 하나가 겨드랑이에서

쑥 빠져 나옵니다

망치로

빠져나온 쇠못을 박아 넣자

등받이가 왼쪽으로

기울어 버립니다

 

어렸을 때 동생과 그 위에서

마구 뛰고 싸우고 던지고

온갖 까탈을 부려도

묵묵히 다 받아준 의자

언제고 필요하면

아무 생각없이 털썩 앉곤 했는데

 

기울어진 의자를 바라보니

어깨가 시큰거리며

풍 맞아 기우뚱해진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오래 됐다고

 

망치로 이리저리 내리치다

안 되면 버리려고 하다니

 

이번엔 아무리 돈이 들어도

의자를 제대로

고쳐야겠습니다

 

                  - 맨홀과 토마토케첩, 천년의 시작, 2003

 

 

 

 

 

 

 

* 오랫동안 의지하며 살았던 것은 어른들의 사랑이었다.

내리사랑이라고 값없이 우리에게 주기만 했던 어른들.

시간은 유한해서 이제는 그분들이 계시지 않다.

그분들이 내어준 의자가 우리에게 얼마나 크낙한 품이었는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이제 우리가 의지할 의자는 사라지고

내가, 우리 세대가 그 의자 노릇을 하고 있다.

옛날처럼 존경 받거나 고마워하지는 않겠지만 물려받은 의자가 되어

의자 노릇을 하며 산다.

 

새해에 고쳐먹는 마음은

삐걱거리며 좀 흔들린다 해도 많이 털썩거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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