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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닮 [윤의섭]

by joofe 2022. 5. 28.

 

 

 

 

 

 

닮 [윤의섭]

 

 

 

 

 

  어느 화랑에 걸린 우울한 초상을 닮은 달

  지는 햇살에 눈을 찡그린 오래된 사진의 표정을  닮은 달

 

  몇 년 전에 똑같은 얘기를 나눈 것 같았는데

  이 카페는 오늘 처음 와 본 곳이다

  마주 보고 앉았지만 마주 대한 건 내심이었다

 

  창밖으로 문득 내 뒷모습이 지나간 듯했다

 

  우리는 지나온 날의 모든 순간을 닮아 있다고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

  과연 공포를 닮았다는 건가

  테이블마다 놓인 냅킨 한결같은 메뉴 모태가 같은 머그

컵 모두

  비슷하길 마다하지 않는데 다르다면 처음부터 달랐다면

 

  이란성 달이었을 것이다 서로 따로 바라보고 있는 착각

의 달

 

  아이스크림엔 소금도 들어간대요 더 달라고

  정말 달아져요 정반대 맛인데

  단맛을 닮은 거겠죠 완벽히 달라야 닮아 갈 게 많은

거니까

 

  커피에 비친 두 개의 달을 한 모금씩 삼킨다

  조금 더 닮아 간다

 

                                    -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 민음사, 2019

 

 

 

 

 

 

 

* 혹시 닮,이라는 카페가 있을까. 없다면 내가 닮,이라는 카페를 열까.

삶의 오타라기엔 ㅅ과 ㄷ이 자판에선 멀리 떨어져 있다.

두개의 달이란 실은 두개의 마음이라는 말이겠지.

내 마음도 내마음과 내 마음으로 두개의 마음이라니.

닮아야 가겠지만 늘 같지는 않다.

커피의 첫 모금은 따뜻함과 그윽한 향기와 뇌를 건드리는 황홀함이 있고

두번째 모금은 닮기야 했지만 완전 다르다.

세번째, 네번째......갈수록 그 모금들은 두번째 모금과 같다.

결국 첫 모금과 나머지 모금으로 나뉜다. 너무 좐인한(?) 표현인가.

커피 한 잔에 두개의 맛처럼 늘 내 마음은 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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