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룩 [문성해]
이 다섯 평의 방 안에서 콧바람을 일으키며
갈비뼈를 긁어 대며 자는 어린 것들을 보니
생활이 내게로 와서 벽을 이루고
지붕을 이루고 사는 것이 조금은 대견해 보인다
태풍 때면 유리창을 다 쏟아 낼 듯 흔들리는 어수룩한 허공에
창문을 내고 변기를 들이고
방속으로 쐐애 쐐애 흘려 넣을 형광등 빛이 있다는 것과
아침이면 학교로 도서관으로 사마귀 새끼들처럼 대가리를 쳐들며 흩어졌다가
저녁이면 시든 배추처럼 되돌아오는 식구들이 있다는 것도 거룩하다
내 몸이 자꾸만 왜소해지는 대신
어린 몸이 둥싯둥싯 부푸는 것과
바닥날 듯 바닥날 듯
되살아나는 통장잔고도 신기하다
몇 달씩이나 남의 책을 뻔뻔스레 빌릴 수 있는 시립도서관과
두 마리에 칠천원 하는 세네갈 갈치를 구입할 수 있는
오렌지마트가 가까이 있다는 것과
아침마다 잠을 깨우는 세탁집 여자의 목소리가
이제는 유행가로 들리는 것도 신기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닦달하던 생활이
옆구리에 낀 거룩을 도시락처럼 내미는 오늘
소독 안 하냐고 벌컥 뛰쳐 들어오는 여자의 목소리조차
참으로 거룩하다
- 내가 모르는 한 사람, 문학수첩, 2020
*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이 된다는 뜻이고 일반인중에 대단한 사람에게
대단하다,라고 했던 것인데 대단한 것에 더해 더 숭고하고 성스럽기까지 할 때
거룩하다,라고 표현을 했다.
예수나 석가처럼 종교적으로 신이 된 경우 거룩하다 말하고
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에 가까운 헌신을 해서 구별되는, 예를 들면 마더 데레사 같은
위인에게는 거룩하다,라고 칭송해 준다.
하지만 가난하고 별로 보잘것은 없더라도 자기의 처지에서 소박하지만 누릴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느낄 때 그게 나의 거룩이라고 스스로 '오유지족'을 말하는 평범한 삶이
실은 신이 권유하는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일날 교회에서 찬송한다고 거룩해지는 건 아니다.
생활 속에서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어쩌면 삶의 거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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