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 [강성은]
합창대회에 나갔다 관광버스를 타고 먼 도시로 갔다
하얀 블라우스와 빨간 스커트를 입고 목에는 나비넥타이
를 맸다 지휘자 선생님은 오지 않았다 선생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대신 오늘은 할아버지 교감 선생님이
지휘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휘자 선생님은 지금 슬픔에
잠겨 있다고 했다 우리가 선생님의 슬픔을 위로해주어야
한다고 꼭 상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선생님은 지금 울고
계시겠지 울고 있을 선생님을 생각하다가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리자 곧 모두가 흐느껴 울었다 우리는 나뭇잎 배를 불
렀다 선생님을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울음이 그치
지 않았다 노래하며 울며 토했다 너무 슬펐기 때문인지 멀
미를 한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상을 받지 못했고 돌
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울었다 울다가 토했다 아직 어려서
슬픔을 모른다고 했다
- Lo-fi, 문학과지성사, 2018
* 지휘자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선생님의 부친이 돌아가셨다는데
흐느껴 울만한 일은 아닌데 흐느껴 울었다는 건 아직 죽음이 주는 슬픔을 모른다는 말이다.
어쩌면 할아버지 교감의 어설픈 지휘에 화음이 엉망이 되어 연습한대로 되지않아
그게 속상해서 울었을지도 모른다.
일천구백칠십팔년 십일월, 반별 합창대회에 우리반은 '연가'를 신청했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그게 뉴질랜드 민요이기도 하고 복음성가로 교회에서는 많이 부르는 노래인데
음악선생님은 뿔딱지가 나서 우리반 전부를 강당에 모았다.
왜 이딴 가요 노래를 신청했냐며 엄청 화를 내더니
옷 벗고 빤스만 입고 줄서라더니 회초리로 엉덩이를 후려쳤다.
추운 겨울에 그 작은 회초리는 엄청 매서웠다.
결국 '냉면'이라는 노래로 바꿔 부르고 등수 안에 들지 못했다.
'한 촌사람 하루는 성내 와서~~'
우리는 아직도 그 음악선생님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모른다.
그 바로 다음해부터 가요도 허락해서 더더욱 의아했다.
후배들은 '나 어떡해'도 부르고 참 부러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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