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이은규]
문을 활짝 여시오
꼭 닫으시오 문을
마음이라는 무한한 원을 어떻게 열고 닫을까
빗장뼈의 어원은 작은 열쇠
무른 태아에게서 가장 먼저 솟아나
어른이 될 때까지 점점 단단해진다는 뼈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기억처럼
멀리서 가까이서 누군가의 목소리
마음의 빗장을 열어라 닫아라
세상 모든 빗장이 열리는 절기, 봄
만화방창 만화방창
열어라 닫아라 기억의 빗장을
어떤 포옹은 꽃그늘 아래서의 전쟁
보이는 분홍과 안 보이는 분홍을 다투는 사이
문장이 되기 전 흩어져버릴 숨결들을
뼈에 새기다, 꽃잎처럼 무르고 단단한
문득 한 사람이 꽃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했을까
다만 한 사람이 아름다운 꽃들에 대해 말했을까
우리 이제 하나의 이름으로 묶일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으며 믿지 않으며
순리대로, 네 음절 앞에 무릎 꿇지 않을 것
오래전 잃어버린 빗장을 찾아
오고 있는 시간에 아첨하지 않을 것
분홍을 꼭 닫으시오
활짝 여시오 분홍을
-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문학동네, 2019
* 마음문을 닫는다는 것, 혹은 연다는 것
그것은 내마음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닫히기도 하고 열리기도 한다.
어떤 때는 아예 마음의 빗장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다행인 것은 망각의 강물을 마실 때가 있어 빗장이 열리기도 한다는 것.
그런데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는 것은 번뇌인 것이어서
슬그머니 치매를 빙자해 완전 망각해서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마음은 늘 번뇌의 연속인 까닭이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닫으시오, 여시오
저리 말하는 건 누구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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