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시를 견디라며 [박완호]
시는, 시를 견디라고 내게 온다.
어제의 나를 견디고
여태 짊어지고 있던 불행을 더 끌어안으라고
이런 개새끼, 귀가 다 헐도록 들어온
수모와 욕설까지 한꺼번에
나를 찾는다. 그날,
비 내리는 무심천 울먹이는 물그림자
툭하면 꺼지려 들던 불꽃의 어린 심지
앙다문 입술 사이 실금처럼
일그러지던 글자들. 시는
어떻게든 오늘을 버텨내라며
어제처럼 나를 일으켜 세운다. 온 힘을 다해
지평선을 밀어버리려는 사내*를 보라며
경계에 설 때마다 머뭇거리는
나를 싸움판으로 떠밀어댄다.
* 유홍준 詩, 「지평선」
- 문득 세상 전부가 되는 누군가처럼, 북인, 2022
* 詩를 한자로 풀이하자면 사원에 가서 말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원에는 절대자, 신이 있고 인간은 그 앞에 서서 자기의 말을 한다.
'저는요, 이런 게 힘들고요, 저런 게 하고 싶은데 잘 안되고요, 어찌해야 하는지요.'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학교 다녀와서 일러바치는 것 같다.
산다는 게 20%는 즐겁고 행복하겠지만 80%는 힘들고 괴롭고 견뎌내야 하는 거다.
하루를 산다는 건 견뎌내야 하고 버텨내야 하는 시간들로 가득하다.
신에게 '힘들어 죽겠어요.'라고 말한들 위로의 말이 메아리로도 돌아오지 않는다.
온전히 우리가 읊조리고 읊조린대로 살아야 하는 게 삶이다.
기도가 꼭 사원에 가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서 있는 여기, 이곳에서 기도하듯 읊조리고 버티고 견뎌내면 그게 詩이고 삶이다.
슬퍼도 기도하고 기뻐도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버티고 견뎌내자.
슬퍼서 하는 기도는 응답이 없어도 스스로 해내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기도일 게다.
기뻐서 하는 기도는 기도한대로 이루어 져서 감사하다는 의미의 기도일 게다.
견뎌내는 모든 이들이 곧 詩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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