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은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망루는 무너지고
꿈꾸지 않은 곳에서
흰구름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멀리서 가까이서 사람들이 죽었다
춥거나 뜨거운 곳에서 이름도 없는 방에서
나는 그늘지지 않을 기회를 잃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풍경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사람들은 성급한 화해밖에 몰랐고
알 수 없는 눈빛만을 남기고 등을 보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나라는 자신 스스로에게 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느냐며
단추를 목까지 채우고 비굴한 거리를 바라보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여기저기서 위로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출발도 못했는데 쉬어 가라는 목소리처럼
나는 달콤한 제안을 아낌없이 받아들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지나치게 우울했고
나는 지나치게 어리석었고
나는 지나치게 홀로였다
뒤늦게 결심했다 되도록이면 잘 살기로
평생 아름다운 신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죽기 전 벽난로에 그림을 던져넣은 그처럼 그렇게
*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 기대어 쓰다.
-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문학동네, 2019
* 내가 파란글을 쓰면서 늘 청년주페라고 나를 칭했다.
교만함은 아니고 그저 늘 청춘처럼 살고자 했던 것.
요즘 진짜 청년들은 가장 예쁠 때임에도 지나치게 구겨져 있다.
한편은 안쓰럽고 한편으로 미안하다.
우리가 다음세대에게 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한 미안함인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늘 그렇다.
내가 예쁠 때 세상은 늘 다정한 풍경은 아닌 것이다.
청년들에게 무슨 일이든 귀천 가리지 말고 시작해보라 권하고 싶다.
일년정도 하면 세상을 알게 되고 삼년만 하면 자신이 생긴다.
그렇게 십년만 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
일년 삼년 십년이 실은, 가장 예쁠 때가 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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