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정석 - 소수(素數) [진해령]
일과 자신밖에 모르는 소수(素數)인 당신
2호선 전철을 타고 고시원과 회사를 오가며
삼각김밥 참치 맛 두 개와
사발면에 청춘을 말아먹는 무한반복
하루하루가 순환소수인 당신
비참에는 휴일도 없어 주말이면 더 바닥이 보이는
실체와 망상이 뒤섞여
누가 나인지도 모르는 복소수인 당신
1이 소수(素數)가 아니듯
한 번도 무엇이었던 적 없는 당신들
흰 셔츠의 당신 검은 슈트의 당신
이 세상에 무수히 많은 당신들이 있어
기차가 떠나고 비행기가 뜨고
상점들이 문을 열지만 그러므로
도처에 무심이 흘러넘친다
냉정의 홍수 무관심의 포만
주유소 뒤편 공터에는
머리카락을 돛대처럼 세운 아이들
떠나온 별을 향해 조난신호라도 보내는지
빨간 담뱃불이 우주를 향해 깜빡이고 있다
- 너무 과분하고 너무 때늦은, 문학의전당, 2017
* 1부터 100까지 숫자중 소수(素數)는 스물다섯개다.
이 소수가 25%라는 거다. 결코 小數는 아닌 것 같다.
1은 소수가 아니고 2부터다. 1과 자신으로만 나누어지는 수를 말한다.
다른 수로는 나누어지지 않는다니 무척 외로울 수 있겠다, 싶은데
25%가 외로운 거니 그닥 외롭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게다.
복작복작 군중속에서도 어차피 나 하나는 외로운 거다.
연말이 다가오니 그동안 무심히 지냈던 모든 이들에게
흰 천을 흔들며 나, 여기 있어요. 나 소수에요, 라고 조난신호를 보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허수가 아닌 실수가 되어 또렷한 나를 찾을 것만 같다.
** 진해령선생님.
압해도에서의 생활은 괜찮으신지요.
앞에도 압해도, 뒤에도 압해도...명랑한 생각으로 잘 지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건강하시고 복된 하루,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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