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 [김안녕]
망원, 망원은
희망보단 원망하는 마음들이 모여 사는 마을 같다
퇴근할 때 그런 마음은 더해지고
시를 써야 할 텐데
못 쓴 날들이 얼마나 되었지,
어쩔 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저녁 끼니로 순대 일 인분을 산다
―내장 넣어 드려요?
―간만 빼고 주세요
―간만 달라는 분도 있고 간만 빼고 달라는 분도 있고 다 달라요
마스크 밖으로 웃음이 삐져나오고
푸드트럭 사장님은 길바닥에 사는 현자구나
희멀건 허공 간질이듯 내장 냄새 피어오른다
―멀리 가요?
―예, 멀리 갑니다
순대는 비닐에 한 번 담기고
신문지에 돌돌 말려 사각 보따리가 된다
―이렇게 싸면 식지도 않고 냄새도 안 나요
나는 정말 멀리 가는 사람이 된 것 같다
태릉행 전철을 탄다
식지 않는 순대가
식지 않을 심장처럼
동행한다
기꺼이
꺼이꺼이
- 사랑의 근력, 걷는 사람, 2021
* 서울 치고는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 망원동이다.
희망이 멀어지는 동네도 아니고 희망이 원망보다 작은 동네도 아니다.
늘 시장은 복작거리고 시장통에서 칼국수 한 그릇하려면 줄 서듯 해야하는 곳.
윤관영시인이 부대찌개 팔아서 얼마나 남는지 모르지만
라면은 무한리필이고 밥도 큰 밥통에서 맘껏 퍼다먹어도 된다.
바라고 원하는 만큼 퍼먹을 수 있으니 배고픈 청년들이 가기에는 딱이겠다.
다행히 애인을 동행해서 거리를 채우는 청년들이라 잘 하면 미래가 보인다.
연애 잘 해서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고 대한민국을 이어가면 좋겠다.
순대 1인분을 파는 푸드트럭 사장님은 현자이기도 하고 배려가 넘치는 분이다.
그만큼 사람 사는 동네가 바로 망원이라는 말 같다.
뭐든 싸게, 많이 주는 동네이니 희망도 크낙, 소원도 크낙!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빛멍 [이혜미] (0) | 2022.07.17 |
---|---|
외출 [고민형] (0) | 2022.07.10 |
가능주의자 [나희덕] (0) | 2022.07.04 |
수학의 정석 - 소수(素數) [진해령] (0) | 2022.07.01 |
사막의 잠 [진해령] (0) | 2022.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