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주의자 [나희덕]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그렇다고 제가 나폴레옹처럼 말하려는 건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은 불가능들로 넘쳐나지요
오죽하면 제가 가능주의자라는 말을 만들어냈겠습니까
무엇도 가능하지 않은 듯한 이 시대에 말입니다
나의 시대, 나의 짐승이여,*
이 산산조각난 꿈들을 어떻게 이어붙여야 하나요
부러진 척추를 끌고 어디까지 가야 하나요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하나요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능주의자가 되려고 합니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어보려 합니다
큰 빛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반딧불이처럼 깜박이며
우리가 닿지 못한 빛과 어둠에 대해
그 어긋남에 대해
말라가는 잉크로나마 써나가려 합니다
나의 시대, 나의 짐승이여,
이 이빨과 발톱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찢긴 살과 혈관 속에 남아 있는
이 핏기를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무언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어둠에 기대어 가능한 일일까요
어떤 어둠의 빛에 눈멀어야 가능한 일일까요
세상에, 가능주의자라니, 대체 얼마나 가당찮은 꿈인가요
* 오시프 만델슈탐, 『시대』『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조주관 옮김,
문학의 숲, 2012, 96쪽
- 2022 시와 편견 여름호
* 모두가 큰 빛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작은 빛이라도 되어 누군가에게 빛을 주고 싶은 욕망을 갖는다.
가능하지 않은 것 같은데 가능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욕망의 결과이기도 하다.
열심히 살아내며 말라가는 잉크로나마 시를 써나갔던 분들.
최근에 김안녕, 최삼용, 황용순이 가능주의자가 되어 가당찮은 가능을 보여주었고
시민(詩民)들에게 빛을 보여주었다.
큰빛도 아니고 작은 빛도 아니다. 우리에겐 그저 크낙한 빛이다.
'시사랑'이 모처럼 풍성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또다른 가능주의자를 찾아야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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