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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빛멍 [이혜미]

by joofe 2022. 7. 17.

 

 

 

빛멍 [이혜미]

 

 

 

 

 

   돌이켜보아도 무례한 빛이었다. 최선을 다해 빛에 얻어맞고

비틀거리며 돌아오는 길이었다. 응고되지 않는 말들, 왜 찬란한

자리마다 구석들이 생겨나는가. 너무 깊은 고백은 테두리가 불

한 웅덩이를 남기고. 넘치는 빛들이 누르고 가는 진한 발자국

들을 따라. 황홀하게 굴절하는 눈길의 영토를 따라. 지나치게 아

름다운 일들을 공들여 겪으니 홀로 돋은 흑점의 시간이 길구나.

한 것에도 상처 입는다. 빛날수록 깊숙이 찔릴 수 있다. 작은

반짝임에도 멍들어 무수한 윤곽과 반점을 얻을 때, 무심코 들이

닥친 휘황한 자리였다. 눈을 감아도 푸르게 떠오르는 잔영 속

이었다.

 

           - 빛의 자격을 얻어, 문학과지성사, 2021

 

 

 

 

* 얻어맞은 상처는 멍이 되겠지만 가끔 멍을 푸는 방법으로 멍때리기가 있다.

불을 바라보면 불멍, 물을 바라보면 물멍, 바람을 맞으면 바람멍, 숲을 바라보면 숲멍.

호숫가에 앉아 윤슬을 바라보는 윤슬멍, 꽃밭에 앉아 꽃을 바라보는 꽃멍, 구름을

바라보는 구름멍까지 많은 멍때리기가 있다.

멍때리기를 하면 상처 받았던 마음이 정갈해진다.

특히나 어두운 밤에 별빛을 바라보면 별빛멍, 달빛을 바라보면 달빛멍이 될 게다.

어둡고 상처 받았던 마음이 빛멍을 통해 치유의 효과를 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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