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와 감상

눈을 뜰 수 있다면 [박은지]

by joofe 2022. 7. 22.

 

 

눈을 뜰 수 있다면 [박은지]

 

 

 

 

활활 타오르는 불을 구경했다

 

저게 우리의 미래야

나는 거대한 캠프파이어 같다고 생각했지만

너의 눈동자를 오래 들여다보니 왠지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뜨겁고 빛나는

 

우리가 머물던 의자도 불타고 있을걸

의자 아래에선 잡초가 적당한 높이로 자라고

우리가 흘릴 아이스크림을 기대하며 발등을 오르던 개미

의자 옆에는 결말을 쌓아 만든 돌무더기가 있었다

돌무더기를 뒤덮은 나무 그림자도 뜨겁게 빛나고 있을까

 

밤새도록 타는 소리를 들었다

꿈에선 결말의 비밀이 불탔고

모든 이야기가 다시 끓기 시작했다

들끓는 꿈

 

새벽은 연기가 점령했다

아침 냄새와 저녁 냄새를 모두 불에 빼앗겼다

계곡을 따라 불이 사라진 자리를 걸었다

검은 하늘 아래 검은 재가 가득했다

모두 비슷한 색을 갖고 있었다

발이 묶인 것 같은 기분이야

 

그렇게 불타고도 남은 게 있다니

미래는 정말 멋지다

너의 말을 들으니 걸어 볼 마음이 생겼다

키들키들 웃으며 타고 남은 재를 서로의 얼굴에 묻혔다

손과 얼굴이 모두 검게 변했다 발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모두 비슷한 색을 갖고 있었다

 

너의 눈동자만 들여다보았다

 

                - 여름 상설 공연, 민음사, 2022

 

 

 

 

 

*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영국은 여름에 비가 많이 오고 해가 잘 나지 않아 에어컨 없이도 살아왔다는데 

지금은 폭염으로 난리가 난 모양이다.

산불이 나면 잘 꺼지지 않을 정도로 각국이 골치를 앓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지만 수온이 점점 올라서 어종도 바뀌어 가고 

즐겨 먹었던 어종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어쩌면 사계절이 뚜렷했던 것에서 여름,여름.여름과 가을 같은 겨울만 남게 되는 건 아닌지.

좋았던 기후환경이 인간의 무지함으로 일어난 자연현상이다.

이제라도 지혜를 모아야 활활 타오르는 열기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는...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침묵의 미로 [신철규]  (0) 2022.07.25
시클라멘 [송종규]  (0) 2022.07.23
빛멍 [이혜미]  (0) 2022.07.17
외출 [고민형]  (0) 2022.07.10
망원 [김안녕]  (0) 2022.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