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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나는 아직 돌아오질 않았네 [이향란]

by joofe 2022. 7. 29.

청바지만 입었던 시절이 있었지.

 

 

 

 

나는 아직 돌아오질 않았네 [이향란]

 

 

 

 

이젠 돌려 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만 돌아가겠다고 해야 하나

 

나는 아직 내게 돌아오지 않았네

 

빛은 빛에게 그늘은 그늘에게 시간은 시간에게 돌아가

다시 빛나고 푸르고 소란스럽게 째깍이는데

나는 차마 묻지 못하겠네

 

왜 내가 돌아오지 않는지

왜 돌아갈 수 없는지

 

가끔의 너는 나를 구름 속 깊숙이 묻어 놓았다가

어느 날 문득

맑게 씻긴 말들을 건네며 나를 꺼내네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는 오래된 카페의 창가에 앉아 나를 기다리네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거나

음악도 없이 고개를 까닥이며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네

 

초인종만 울리고

너라는 모퉁이에 잽싸게 숨어 버리는 나를

 

                 - 뮤즈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천년의시작, 2022

 

 

 

 

 

* 청춘은 아름답다.

헤세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지나간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나에 대한 청춘의 기억을 네가 되살려 줄 뿐이다.

돌아가고 싶고 빛나던 그 시절이 그립고 지금도 돌아오길 기다리지만

도무지 돌아오지 않는다.

느리게 커피 한모금으로 머리를 헹구어 보지만 나는 어디에도 없다.

지나간 시간, 소중한 순간, 아깝게 허비했던 낭패감들이 그냥 노래로 남아

나직이 불러볼 뿐이다.

 

청춘은 가는 것이지 오는 것은 아니다.

맑게 씻긴 말들을 나누며 잘 보내주자. 가는 청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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