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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말의 폭우 [이채민]

by joofe 2022. 7. 30.

 

말의 폭우 [이채민]

 

 

 

 

 

말을 끌고

굴곡진 말의 언덕을 넘는다

선을 넘어서

넘어가고 넘어오는 말

 

주어가 생략된 동사 형용사가

앞이 보이지 않는 해일을 일으키며 질주한다

 

위태로운 바다는 그대로 위태롭고

깨진 화분은

그대로 화분의 이력이 된다

 

바닥인 말을 만나러 부스럭거리는

새벽은

얼마나 부끄러울까

 

그을리고 깨진 말의 폭우 속에서

맹렬하게 자라나는

가시 꽃은

절망보다 위태롭다

 

                - 까마득한 연인들, 현대시학사, 2022

 

 

 

 

 

* 요즘 아이들은 다섯살만 되어도 언어 구사력이 뛰어나다.

- 아빠가 날 때리면 경찰이 와서 수갑을 채울 거예요.

- 엄마는 나한테 관심이 없어요.

뭐 이 정도면 그래도 양반인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어마무시한 말들은 

혀끝에서 자유자재다.

어쩌다 아이들은 '수갑'이라는 말과 '관심'이라는 고상한 말을 하게 되었으며

어른이 쓰는 쌍시옷 발음들을 구사하게 되었을까.

아이는 아이답게, 청소년들은 청소년답게, 어른들은 어른답게

말을 바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언어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은 폭우가 아닌 적당함을 유지하며 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때와 장소와 경우에 맞게 말을 잘 구사하도록 해야겠다.

3분 스피치 한번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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