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에 유혹되다 [구수영]
비 오는 날 꼭
커피를 마셔야 할 이유는 없지만
비 오는 아침 따뜻한 커피 한 잔은
유혹이다
무너져야 끝이 나는 유혹 앞에
붉은 입술을 내밀면
해발 천 오백 미터 화산재가
날아든다
새가 되어 편지가 되어
주말 산책길에 마스크를 비집고 날아들던
유혹의 손을 잡고 걸어오던 길
무엇으로 나는 누군가의 그리움이 될 수 있을까
가루가 되어야 닿을 수 있는 나라
온 세상 물들이는 메이드 인 코스타리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알 수 없는 나라가
한 잔의 커피가 되는 짧은 시간
무심하게 여과지를 통과하며
그렁대는 코스타리카
- 흙의 연대기, 실천, 2021
* 천안에서 커피를 잘 내리는 집으로는 '언덕위 커피나무'
'산타클라라' 그리고 '미소레커피'를 꼽을 수 있다.
처음엔 서울의 '나무사이로'와 '연두'를 자주 다녔지만
두곳이 사라져버렸다.
주로 케냐를 즐겨 마시고 실은 멕시코를 좋아했는데
멕시코를 파는 곳은 '연두'뿐이었다.
'언덕위 커피나무'의 주인이 잘 내렸던 건 탄자니아였는데
어느날 주인이 바뀌고는 탄자니아를 마시지 않는다.
코스타리카를 잘 내리는 집은 의왕시에 있는 '커피볶는자유'이다.
그집은 주인이 콩을 아주 정성스럽게 고르고 골라 내려준다.
역시나 멀어서 우연히 그길을 지나갈 때만 마실 수 있다.
멕시코를 마시려면 경북대 정문앞에 있는 '커피나무'를 가야한다.
이런 폭염의 여름에 퍼질러 앉아 책이나 읽으며 멕시코를 마시면 딱인데.
그러고보니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나라를 마시고 있었네.
우리집 거실에 원산지를 모르는 커피나무가 여섯그루나 있는데
천장에 닿아서 우듬지를 잘라 키우고 있다.
어제도 작은 화분에 커피콩알을 심었다.
물만 주면 잘 크는 커피나무 화분을 또 누군가에게 선물하려고.
얘네들은 나라가 어딘지 모르고 대한민국에서 난 놈들이니
커피콩을 볶아서 내려먹는다면 대한민국을 마시는 꼴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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