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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미워지는 밤 [이미산]

by joofe 2022. 8. 10.

늙은 양치기의 상주, 에드윈 렌드시어 그림

 

 

 

 

 

 

미워지는 밤 [이미산]

 

 

 

 

 

  잠들기 전 꺼내보는 얼굴 하나

 

  여긴 종일 비가 왔어요 당신도 비를 맞았나요

 

  어두워지면 불러보죠 그곳에 어울리는 표정으로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생의 매듭이 된 당신

 

  미소로 시작된 우리의 처음이 있었고

 

  미소로 주고받은 뜨거운 질문이 있었고

 

  질문의 동굴에서 실패를 걸어놓고 사랑이라는 게임을

하며

 

  수없이 들락거렸죠 물방울 뚝뚝 떨어졌죠 나는 어제

내린 빗물이라 하고 당신은 아담과 이브의 눈물이라 하고 

 

  언제나 동굴의 자세로 당신은 나를 안아주었죠

 

  그리하여 우리는 각자의 동굴 이후라는 그리움

 

  이제는 혼자 걷고 있죠 우리의 비 수억 년 떨어지는 그

물방울

 

  한때 미치도록 궁금했던 모든 당신 자꾸만 희미해지는

 

  이런 내가 미워지고 있죠

 

           - 궁금했던 모든 당신, 여우난골, 2022

 

 

 

 

* 사랑과 우정의 공통점은 오래 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없거나 친구가 없다면 정말 재미없는 삶이 될 게다.

사십여년 전 얘기이긴 한데 일년 후배인 경희(그 때 스무살)가, 엄마아빠가 은혼식을 한대요.라고 말하며

어휴, 그렇게 오래 살면 지겹지 않을까요.한다.

예끼, 이 녀석 그깢 이십오년이 뭐 오래라고!

그런데 돌이켜 보니 이십오년 산다는 게 만만치 않은 세월이고 은혼식하는 분들께는 박수 칠만 했다.

그러니 금혼식은 더구나 오십년이 아닌가. 더더더 박수 쳐야 한다.

사랑도 그렇지만 우정도 이십오년 넘기기가 쉽지 않다.

뭐 하나라도 삐끗하면 의가 상해서 등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국환이 불렀다.

-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다 안다면 재미 없지

타타타의 노래 가사가 그렇게 말했다.

한때 궁금했던 것 다 알고 나면 무불통지라 재미없고 시들해지고 신비감 떨어지고 존경도 할 수 없다.

그러니 2프로는 궁금하게 내버려 두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한다.

그래야 재미있고 내가 미워지지 않는다.

 

-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마.

아유, 궁금해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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