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의 담배에 불을 붙이며 [이향란]
물가에 사는 뮤즈는 담배를 좋아하지
물보라를 돌돌 말아 입술 없는 입가에 갖다 대고는
물고기처럼 늘 뻐끔거리지
뮤즈는 빛이라서
아니 어둠이라서 볼 수가 없지
조약돌로 누워 버릴까 생각은 하겠지만
그건 뮤즈가 아니라서
시간의 등 뒤에서 뮤즈는
뭔가의 신호를 기다리지
밤의 결을 따라 노래 부르고 춤을 추어도
어느 곳도 가 닿을 수 없지만
뮤즈는 외로운 걸 몰라 서성대기만 하지
낮의 물가나 밤의 기슭을
내게 어느 불면의 밤이 찾아와
끊었던 담배를 꼬나물었을 때
잠들지 못하는 뮤즈가 잽싸게 날아들었지
타는 내 담배에 젖은 담배를 갖다 대며
성급하게 훅훅 빨아 들였지
그리하여 뮤즈의 담배에 불이 붙기 시작했을 때
뮤즈는 내가 되고
나는 빛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나를 보았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수소문해도 찾을 수 없는
- 뮤즈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천년의시작, 2022
* 詩歌의 여신이 나를 찾아와 함께 노래 부르고 춤추며
하나가 되어 담배를 피운다면 짧은 화양연화 혹은 짧은 청춘은 아닐까.
분명히 존재했던 시간이었고 분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어어, 하는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춤추는 환영과 멋진 연주와 아름다운 가사의 노래가 심장에서는 여전히 쿵쾅거리는데
손에도 없고 어디에도 없다.
가슴에 손을 얹고 심박수에 맞춰 기억을 기억하는 밤.
꿈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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