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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당신이라는 말 [나호열]

by joofe 2022. 8. 11.

 

 

 

 

 

당신이라는 말 [나호열]

 

 

 

 

양산 천성산 노천암 능인 스님은

개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다

스무 첩 밥상을 아낌없이 산객에게 내놓듯이

잡수세요 개에게 공손히 말씀하신다

선방에 앉아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싸우든 말든 쌍욕 앞에 들어붙은 개에게 어서 잡수세요

 

강진 주작산 마루턱 칠십 톤이 넘는 흔들바위는

눈곱만한 받침돌 하나 때문에 흔들릴지언정 구르지 않는다

개에게 공손히 공양을 바치는 마음과

무거운 업보를 홀로 견디고 있는

작은 돌멩이의 마음은 무엇이 다른가

그저 말없이 이름 하나를

심장에서 꺼내어 놓는 밤이다

 

당신

 

                - 계간문예, 220년 가을호

 

 

 

 

* 당신이라는 말은 상대방을 높여서 호칭하는 것이나

쌈박질하는 사람들이 싸우면서 뭘 높여준다고 당신이, 어쩌구 저쩌구 하다보니 격이 떨어져버렸다.

게다가 부부간에도 당신이라 높인다고 높인 것이나 호칭으로 잘 쓰이지 않는 추세다.

요즘 사람들은 당신 대신에 자기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일심동체라고 하는 것인지 내꺼라고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세상만물에 공손히 공양을 바치는 마음으로 당신이라 존대하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돌멩이에게까지도 당신이라고 존대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존귀한 것이다.

남을 높이는 것이 나를 높이는 것이니 어디에서라도 당신이라는 말을 할 때에는 손을 공손히 하라.

손으로 여기저기 삿대질 하지 말고.

그저 말없이 당신이라는 말을 심장에서 꺼내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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