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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업어주는 사람 [이덕규]

by joofe 2022. 8. 16.

어릴 땐 엄마가 날 업어줬으니 커서는 아들이 업어줘야지!

 

 

 

 

 

업어주는 사람 [이덕규]

 

 

 

 

오래전에 냇물을 업어 건네주는 직업이 있었다고 한다

물가를 서성이다 냇물 앞에서 난감해하는 이에게 넓은 등을 내주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선뜻 업히지 않기에

동전 한 닢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업히는 사람의 입이 함박만해졌다고 한다

찰방찰방 사내의 벗은 발도 즐겁게 물속의 흐린 길을 더듬었다고 한다

등짝은 구들장 같고

종아리는 교각 같았다고 한다

 

짐을 건네주고 고구마 몇 알

옥수수 몇 개를 받아든 적도 있다고 한다

병든 사람을 집에까지 업어다 주고 그날 받은 삯을

모두 내려놓고 온 적도 있다고 한다

세상 끝까지 업어다주고 싶은 사람도 한 번은 만났다고 한다

 

일생 남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버티고 살아서

일생 남의 몸으로 자신의 몸을 버티고 살아서

 

그가 죽었을 때, 한동안 그의 몸에 깃든

다른 이들의 체온과 맥박을 진정시키느라 사람들이 애를 먹었다고 한다

 

                 - 문학동네 2022 여름호

 

 

 

 

 

* 넓은 등을 내주고 업어주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니.

문득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하고 

한 아낙네에게 남편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Give & Take이니 동전 한 닢도 괜찮고 고구마 몇 알, 옥수수 몇 개도 괜찮다.

사랑을 줄 수 있어 감사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

느꼈던 따뜻한 온기가 오래도록 남아있어서 업어주는 사람이 그리울 것이다.

일생을 버티어 주고 버티며 살아줘서 따뜻했는데 죽었다니

남아있는 온기를 어찌하라고.

그가 아버지였을까? 남편이었을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을까?

 

나도 그런 사람이었는지 몰라서 등이 넓었는지 만져보는 중이다.

등짝이 구들장처럼 튼튼한지, 종아리가 교각 같았는지 어루만지는 중이다.

세상 끝까지 누군가를 업어주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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