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안 국밥집 [엄원태]
한동안 점심으로 따로국밥만 먹은 적이 있었다
골목안의 그 식당은 언제나 조용했다
어린애 하나 데리고
언제나 방안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여자가
느릿느릿 차려주는 쟁반 밥상을
나는 수배자처럼 은밀히 찾아들어 먹곤 했다
밥을 기다리는 잠시 동안의 그 적요가
왠지 나는 싫지 않았다
한번은 직장 동료와 같이 간 적이 있는데
을씨년스레 식은 드럼통 목로들을 둘러보며
그가 추운 듯 그 적요를 어색해 하는 것을 보곤
이후 죽 혼자만 다녔다
가끔씩 국이 너무 졸아들어 짜진 것을 빼고는
콘크리트처럼 딱딱한 채 언제나 적당히 젖어 있던
그 낡은 적산가옥의 쓸쓸한 흙바닥까지 나는 사랑하였다
그 식당이 결국 문을 닫고
아이와 함께 늘 어두운 방안에 웅크리고 있던 여자가
어디론가 떠나버린 뒤, 집수리가 시작된 철거현장에서
나는 어린 딸아이의 끊임없는 웅얼거림과 가끔씩
덮어주듯 나직이 깔리던 젊은 여자의 부드러운 음성이
허물어져 가는 회벽 사이에서 햇살에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눈이 부셨다
- 시로여는세상, 2014 가을호
*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식당은 때로 번잡하고
그래서 조용한 식당을 가노라면 너무 손님이 없어
기다리는 시간의 적요를 경험하게 된다.
특히 요즘은 사회적인 거리두기로 인해
잘 되는 곳과 잘 되지 않는 곳으로 구분되어
뜻하지 않게 조용한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가 있게 된다.
임대문의를 붙인 식당도 많아서
늘 가던 식당은 문 닫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조용한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는 카드로 계산하지 않고
현금으로 계산하고 나온다.
부디 문 닫는 일이 없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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