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버릇 [허연]
가끔씩 그리워 심장에 손을 얹으면 그 심장은 이미 없지.
이제 다른 심장으로 살아야 하지.
이제 그리워하지 않겠다고
덤덤하게 이야기 하면
공기도 우리를 나누었죠.
시간의 화살이 멈추고 비로소
기억이 하나씩 둘 씩 석관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뚜껑이 닫히면 일련번호가 주어지고
제단위로 들어 올려져 이별이 됐어요.
그 골목에 남겼던 그림자들도,
틀리게 부르던 노래도,
벽에 그었던 빗금과,
모두에게 바쳤던 기도와
화장장의 연기와 깜빡이던 가로등도 안녕히.
보랏빛 꽃들이 깨어진 보도블럭 사이로 고개를 내밀 때,
쌓일 새도 없이 날아가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했어요.
이름이 지워진 배들이 정박해있는 포구에서
명치 부근이 이상하게 아팠던 날 예감했던 일들.
당신은 왜 물위를 걸어갔나요.
당신이라는 사람이 어디에든 있는 그 풍경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지옥입니다.
- 현대시학, 2019년 5~6월호
*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시간속으로 사라지고
기억이라는 저장고의 석관속에 사라지지만
때로는 그 틈새로 스멀스멀 빠져나와 무의식의 세계를 점령하고
꿈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하나는 천국으로 하나는 지옥으로 나뉘어 활동사진이 된다.
사랑을 많이 주었던 사람이 활동사진에 보이면
기쁘고 반갑고 다시 보고 싶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은 사람이 등장해서 사막으로 험한 절벽으로 나를 이끌고 가면
그게 곧 지옥이긴 하다.
하아, 20대 80을 80대 20으로 바꾸는 버릇약은 없나요?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자 [송종규] (0) | 2021.10.22 |
---|---|
골목안 국밥집 [엄원태] (3) | 2021.10.22 |
오달지다 [장은숙] (3) | 2021.10.21 |
포장마차는 나 때문에 [권혁웅] (2) | 2021.10.20 |
번역자 [장혜령] (0) | 2021.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