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명곡사 [이사라]
춘천 명동을 조금 비껴 선
명곡사에 명곡이 산다
비탈진 골목길 따라
짐 리브스의 가을 목소리가 노래로 흐르면
그날부터 춘천에 가을비 내린다
닭갈비집 대형 출입문 맞은편
소형 점포 음악사에서
몸집 자그마한 주인이
비 젖어 흘러내리는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다가
닭갈비 굽는 연기 사이로
LP판을 올려놓으면
그 순간부터 춘천이 명품이 된다
빙 크로스비 페리 코모 페티 페이지는
떠나고 없어도
명곡은 죽지 않고 타지인도 품으며
춘천에 모여 산다
-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문학동네, 2018
* 빙 크로스비가 시에 등장하는 걸 보면 시인은 나보다 한참 위일 것 같다.
나는 고등학생일 때 광화문, 지금은 경희궁으로 불리는 곳의 건너편에
박지영레코드사와 박인희레코드사를 자주 갔다.
엘피판을 사려는 건 아니고 짱짱 울리는 스피커로 팝송을 듣곤 했다.
버스를 갈아타는 곳이었으므로 버스 몇대 보내고 들었다.
보니엠, 아바 따위의 팝송을 들으며 나무처럼 서 있곤 했다.
지금은 그곳이 너무 많이 변해서 그때의 추억이 서린 곳은 남아있지 않다.
춘천의 명곡사를 지도에서 찾아보니 아직도 음반을 팔고 있다.
세상에나.
요즘 음반 파는 곳은 거의 없다.
대개 음원을 사서 듣지 엘피판이나 씨디로 사지는 않기에 그렇다.
명곡사에 아직도 명곡이 흐를 것 같아 춘천 닭갈비 먹으러 갈 때
명곡사 앞에서 나무가 되어 명곡을 들어야겠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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