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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어린 순례자 [우대식]

by joofe 2021. 11. 18.

 

어린 순례자 [우대식]

 

 

 

 

  원주 어느 고등학교 밴드부였던 어린 외삼촌은 옥상에

서 허벅지를 터지게 맞고 집으로 돌아와 하모니카를 불

었다. 멀고 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 그러면 더 어

린 나는 한낮의 쓸쓸함을 앓곤 하였다. 외삼촌은 자전거

앞에 앉고 나는 뒤에 앉아 어린 낚시꾼이 되어 낚시터로

줄달음질치기도 하였다. 쨍쨍한 여름 햇살 아래 어린 낚

시꾼 둘은 붙어 앉아 흔들리는 수면을 바라보며 밴조를

메고 떠나는 앨라배마를 하염없이 그리워했다. 삼촌 앨

라배마가 어디야. 응 멀어.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앨

라배마는 없나. 해가 질 무렵 자전거를 끌고 기찻길 옆

으로 걸어가면서 서로의 등짝에 찍힌 선연한 주홍빛 놀

을 보며 놀라곤 하였다. 엄마가 없던 나를 외삼촌은토

닥였던 것 같고 아버지가 없던 그를 나는 불쌍하게 생각

했던 것 같다. 오 수재너여 노래 부르자. 하늘 높이 떠

있던 기찻길을 쳐다보며 어린 순례자의 날이 저물던 앨

라배마로 가는 먼 길.

 

        - 베두인의 물방울, 여우난골, 2021

 

 

 

 

* 일천구백팔십년, 빈 강의시간에는 써클실에 가서 낙서장에 낙서를 하거나

친구들과 하하호호 놀았다.

봉사써클 네 팀이 한 방을 사용했는데 옆 써클에는 복학생 선배가 밴조를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

슬픈 듯, 우아한 듯한 밴조 소리는 기타 소리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어느날 티비에서 대학가요제를 보다가 그 복학생 선배가 밴조를 퉁기며 노래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땐 대부분 장발이었고 노래하며 긴머리를 쓸어올리며 밴조를 퉁기는 모습은 보기에 좋았다.

조동진 같기도 하고 쓸쓸해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농대 선배로 기억하니 지금쯤 저 원주 어디쯤에서 농장을 하며 밴조를 퉁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앨라배마는 우리나라로 치면 원주 정도 되는 시골(?)일테니 

앨라배마를 가는 길은 순례자의 길이 되기도 하겠다.

서울로 향한다면 순례자의 길을 반대로 가는 것이라 하겠다.

앨라배마에 가면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멀고 먼 순례자의 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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