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디 럼* [최현우]
솥과 프라이팬
짝이 없고 구부러진 포크와 나이프
이것저것 담긴 수레에는 깨진 유리병
금을 잔뜩 담아 기르는 그 병을 끌어안고 파는 아이
냄비는 길들입니다
강인한 불에 자락을 볶아
쇠의 틈을 닫습니다
사망이 빈번한 황무지를 사막이라 합니다
묘지 위에 세웠다는 시장 입구에서
수레에 자신을 담아 파는 아이가 보이십니까
단단하게 조인 입술 위에서
목숨에 불질을 하는 저 더러운 아이는 누구입니까
빛을 담았어
당신에게 주려고 했어
내게 가장 밝은 것은
두들겨맞아 부서지고
피멍 든 채 절뚝거렸으므로
그걸 담아 팔려고 했어
아이는 사람의 행렬을 따라갑니다
사용할 수 없는 물건과
필요하지 않은 영혼을 끌고
한줌의 음식과 한 모금의 물을 얻기 위해
수레바퀴가 모래에 삐뚤어진 길을 긋습니다
상인들이 돌을 던지고
여행객은 잡고 있던 손을 풀어
악취에 코를 막고
트럭이 경적을 지르며 일으킨 먼지가 온몸에 달라붙을 때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는 아이가
석양을 찢으며 사라집니다
당신은
절실한 부모가 되기 위해
저를 버리기도 하십니까
하루를 다시 시작합니다
나의 입구에는 어제 팔지 못한
조용한 화병이 놓여 있습니다
* 요르단의 붉은 사막
-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문학동네, 2020
* 미 항공우주국이 화성탐사선을 보내 이것저것 탐사를 하고 있다.
약간 붉은 색을 띠고 있는 행성이 화성이다.
지구에는 요르단에 이 화성과 비슷한 사막이 있는데 붉은 사막이다.
물론 사람이 살지 않고 간간이 내린 소량의 비에 식물이 내린 비만큼만 자라다 말라죽은 전형적인 사막이다.
이름이 와디 럼이다.
동명의 제목인 이 시는 아이가 등장하는데 금간 병을 안고 파는 아이다.
한줌의 음식과 한 모금의 물을 얻기 위해 버림받은 아이처럼 화병을 팔고 있다.
팔리지 않는 화병이다.
요즘 뉴스에 단골로 올라오는 게 어린아이 학대사건이다.
가방에 넣어 눌러 죽이고 소금밥을 먹여 죽이고 물에 집어넣어 죽이고 때려서 죽이고
비정한 부모가 왜 그리 많아졌는지......
화병을 파는 이 아이는 실은, 금이 안간 화병을 팔고 싶은 거고
화병이 아닌 화평을 팔고 싶은 게다.
아이로서 누리고 싶은 평화와 사랑과 자유를 얻고 싶은 것이란 말이다.
부모가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거다.
와디 럼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살며 황무지도 아니고 사막도 아닌 사람 사는 세상이길 바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온전한 화병에 꽃을 꽂아 주자. 제발,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두워서 좋은 지금 [박소유] (0) | 2021.11.22 |
---|---|
부탄 [강신애] (0) | 2021.11.20 |
어린 순례자 [우대식] (0) | 2021.11.18 |
회색의 시 [이기성] (0) | 2021.11.16 |
춘천 명곡사 [이사라] (0) | 2021.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