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 [조온윤]
내가
창가에 앉아있는 날씨의 하얀 털을
한 손으로만 쓰다듬는 사람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섯 개의 손톱을 똑같은 모양으로 자르고
다시
다섯 개의 손톱을 똑같은 모양으로 자르고
왼손과 오른손을 똑같이 사랑합니다
밥 먹는 법을 배운 건 오른쪽이 전부였으나
밥을 먹는 동안 조용히
무릎을 감싸고 있는 왼손에게도
식전의 기도는 중요합니다
사교적인 사람들의 점심식사에 둘러앉아
뙤약볕 같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도
침묵의 몫입니다
혼자가 되어야 외롭지 않은 혼자가 있습니다
밥을 먹다가
왜 그렇게 말이 없냐는 말로
말을 걸어오면
말이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다
말이 없어집니다
다섯 개의 손톱이 웃는 모양이라서
다섯 개의 손톱도 웃는 모양이라서
나는 그저 가지런히 열을 세며
있고 싶습니다
말을 아끼기에는
나는 말이 너무 없어서
사랑받는 말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식탁 위에는 햇볕이 한 줌 엎질러 있어
나는 커튼을 쳐서 닦아내려다
두 손을 컵처럼 만들어 햇볕을 담아봅니다
이건 사랑 받는 말일까요
하지만 투명한 장갑이라도 낀 것처럼
따스해지기만 할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침묵을 오랫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곁에 찾아와
조용히 앉아만 있다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가 나의 왼손입니다.
- 인터넷에 떠있는 시, 2019년 신춘문예 당선집에 나오는 시라고 함
* 천안에 수세수,라는 카페가 있다.
스물 대여섯쯤 보이는 청년이 드립커피를 잘 내려 몇번 갔었다.
한번은 드립커피를 소중하게 들고와 탁자에 놓아주면서
왼손잡이세요? 오른손잡이세요?라고 묻는다.
찻잔의 손잡이를 어느 방향으로 돌려놓을까 물어보는 거다.
아, 네. 양손잡이예요.라고 말하고 한참을 웃었다.
배려심이 아주 많은 청년이었는데 그후 보이지 않아 서운했는데
급기야 그 카페가 드립커피를 접게 되어 갈 수가 없었다.
원래는 왼손잡이였지만 아버지한테 혼나면서
밥먹는 것, 글씨쓰는 것, 탁구칠 때, 야구배트 휘두를 때는 오른손잡이다.
공을 던지거나 굴릴 때는 왼손잡이다.
공평한 건 아니지만 쓸모에 따라 오른손잡이 왼손잡이를 넘나드니
양손은 평화를 누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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