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운세 [권민경]
나는 어제까지 살아있는 사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들의 두 개의 무덤을 넘어
마지막 날이 예고된 마야 달력처럼
툭 끊어진 길을 건너
돌아오지 않올 숲속엔
정수리에서 솟아난 나무가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수많은 손바닥이 흔들린다
오늘의 얼굴이 좋아 어제의 꼬리가 그리워
하나하나 떼어내며 잎사귀 점 치면
일맥을 타고 소용돌이치는 예언, 폭포 너머로 이어지는 운명선
너의 처음이 몇번째인지 까먹었다
톡톡 터지는 투명한 가재 알들에서
갓난 내가 기어나오고
각자의 태몽을 안고서 흘러간다
물방울 되어 튀어 오르는 몸에 대한 예지
한날한시에 태어난 다른 운명의 손가락
눈물 흘리는 솜털들
나이테에서 태어난 다리에 주름 많은 새들이
내일이 말린 두루마리를 물고 올 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점괘엔
나는 어제까지 죽어 있는 사람
-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내가 대학생일 때 어머니는 꼭 신문에 실린 오늘의 운세를 읽으시고
얘야, 오늘은 차조심 하거라.
얘야, 오늘은 木씨성을 조심하거라.
매일매일 나의 운세를 말씀해 주셨다.
물론 들을 때는 네,하고 대답했지만 그걸 하루종일 머리에 품고 살진 않았다.
지금은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시던 오늘의 운세를 가슴에 품고 산다.
혹시나 자식이 다치거나 할까 싶어 재미로 읽는 오늘의 운세를 읊으신 게다.
아마 지금 살아계셨어도 오늘의 운세를 전화로 전해주셨을 것 같다.
오늘도 어머니가 재미로 읽어주는 오늘의 운세가 신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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