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 [김소연]
나쁜 짓을 이제는 하지 않아
나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지
좋아하는 친구가 베란다에서 키운 부추를 주어서
나란히 누운 부추를 찬물에 씻지
좋아하는 친구가 보내준 무쇠 프라이팬에 부추전을 부치지
젓가락을 들고 전을 먹는 동안에
나쁜 음악을 이제는 듣지 않아
나쁜 생각들을 완성하는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지
부추를 먹는 동안엔 부추를 경배할 뿐
저편 유리창으로 젓가락을 내려놓는
너의 모습이 보였는데
왜 그렇게 맨날 억울한 얼굴이니
병이 멈추었니
비명이 사라졌니
나의 병으로 너의 병을 만들던 짓을 더 해주길 바라니
예의를 다해 평범해지는 일을 너는 경배하게 된 거니
참 독하다 참 무섭다 하면서
너를 번역해줄 일이 이제는 없어졌다
모든 게 끔찍한데
가장 끔찍한 게 너라는 사실 때문에
너는 누워 잠을 자버리지
다음 생애에 깨어날 수 있도록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모든 것에 익숙해져버렸지
익숙해져버린 나를 적응하지 못한 채 절절 매지
젓가락을 들어 올려
전을 다 먹을 뿐
만약 이 세상이 대답이었던 것이라면
그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더 강하고 더 짙은 이 부추였을까
병이 멈추어버린 병은 어떻게 아픈 척을 해야 할까
부추를 받고 귀여운 인형을 친구에게 건넸지
무쇠 프라이팬을 받고 예쁜 그림책을 친구에게 건넸지
귀엽고 예쁘게
여리고 선량하게
혼자 있을 때마다 나쁜 것들만 떠올리는데
나쁜 짓은 더 이상 하지 않아
가지런한 부추들
파릇한 부추들
- i에게, 아침달,2021
* 다정한 친구가 직접 키운 부추를 가져다 주고
또 다정한 무쇠 프라이팬을 보내준 친구를 생각하며 부추전을 부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나란히 누워 전이 되어준 이 다정한 부추들을 젓가락 들어올려
경배하듯 먹는, 이 사랑이 충만한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귀여운 인형을 건네고 예쁜 그림책을 건네는 다정해진 나는 얼마나 여리고 얼마나 선량한가.
다정한 친구가 많을수록 나란히 누워서 더 다정해질 것이다.
다정하게 나란히 누워 부추전을 먹는 그때가 오면 두손 모아 고개를 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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