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양념 [권애숙]
수십 년 묵은 여자의 적정량은 알아서 대충인걸요. 간장
도 대충, 고춧가루도 대충, 마늘 생강 설탕도 대충, 대충이
란 말보다 더 적당한 양념이 있을까. 세련된 셰프의 반짝
거리는 스푼이나 저울보다 손맛 구수하게 들어오는 소리.
이것저것 대충 집어넣고 보글보글 끓여낸 뚝배기 된장처
럼, 눈대중 마름질로 대충 만든 엄마의 옷처럼, 맛나고 속
편안한 대충. 그리 살아보아요. 틈 없이 재단하던 자의 눈
금도 희미해지고 빡빡하던 저울의 눈매도 헐렁해졌어요.
때 끼게 계량을 따지지 말고 사랑도 미움도 헐렁하게 대
충, 텅 빈 대나무처럼 속속들이 충만하게 대충, 대충.
- 당신 너머 모르는 이름들, 달아실, 2020
* 수십 년 묵은 여자가 아무리 요리를 안 한다 해도
하루 한끼만 요리를 한다치면 삼백육십오 곱하기 이십년 평균이면
칠천 삼백끼가 되고 두끼면 일만사천육백번을 요리한 셈이다.
대충이 거저 나오는 것은 아니어서 비슷비슷한 요리에는
눈 감고도 양념이 들어갈 게다.
이 정도 되면 하나 빼먹어도 맛은 비슷히 낼 수 있을 터.
그러니 대나무의 속에 충만한 대충이 될만하다.
완벽한 양념, 완벽한 요리는 그만한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결코 대충대충이 아닌 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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