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생달을 머리에 꽂고 오는 저녁 [이순남]
늦은 퇴근을 한다
이제 정년퇴직이 다가오는데
마무리가 잘 되지 않는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간다고
선배님들은 말씀하셨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이다
조직의 그물은 단단할 것이다
가끔은
남대천 청둥오리가 자맥질을 하는 강변을 따라
바다까지 이어진 둑길을 걷고
퀸의 노래나 들으며 빈둥거려볼까
천천히 저무는 하루
오롯한 나의 하루가 기다려진다
버릇처럼 그리운 것을
찾아봐야겠다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
* 정영욱 에세이집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를 차용
- 버릇처럼 그리운 것, 달아실, 2021
* 정년퇴직의 나이는 육학년에 가까운 나이니까 인생으로 치자면 저녁무렵이다.
다행히 초생달을 머리에 꽂고 있다니 그나마 위안을 받고 있고
참 그동안 애썼구나, 그러면 되었다!라는 자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20세기에는 인간의 수명이 길지 않아 환갑이 되면 잔치를 열어 축하해주었지만
21세기에는 환갑뿐만 아니라 칠순잔치도 열지 않는다.
그만큼 다들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얘기다.
퀸의 노래를 온전히 다 들을 수 없을만큼 바쁘게 살았을 삶이지만
초생달 뜨는 저녁에 퀸의 노래를 온전히 들으며 마음의 평안과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겠다.
매일 남대천 둑길을 걸을 순 없겠지만 자기만의 시간을 자주 갖고 오롯한 하루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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