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의 시간 [김승희]
무슨 시간
어느 시간
모란이 핀 시간
무슨 시간
어느 시간
세상 모두 숨 죽여
너도 없고 나도 없고
멀리 모란의 숨결이 불어오는 시간
무슨 시간
어느 시간
한밤중에 홀로
경련으로 몸이 출렁이는 시간
무슨 시간
어느 시간
뭐 이런 시간
뭐 이런 절벽
뭐 이런 벼락
죽을 수도 있는 시간
죽어가는 어떤 시간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숨을 죽이고
꿈틀거리는 심장 홀로
모란만 남는 그런 시간
모르는 숨결이 슬쩍 칼처럼 지나가는 시간
모르는 숨결이 슬쩍 칼처럼 들어오는 시간
무슨 시간
그런 시간
모란이 핀 시간
무슨 시간
그런 시간
망할 놈의
모란이 뚜욱 떨어지는 시간
- 열린시학, 2021년 가을호
* 한밤중에 홀로 죽어가는 시간.
영혼은 육체의 고통을 안타까워할까.
숨이 멈추는 순간을 괴로워할까.
코로나로 노인층이 모란꽃이 뚝뚝 떨어지듯 한다는데
망할 놈의 그 시간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승을 떠나갈까.
어디에도 이름 석자를 알리지 않고 생사를 알리지 않으며
그저 코로나 사망자 숫자중에 1을 차지하며 뚜욱 떨어지고 있을텐데
그게 무슨 시간, 어느 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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