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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모란의 시간 [김승희]

by joofe 2021. 12. 16.

모란의 시간 [김승희] 

 

 

 

 

    

무슨 시간

어느 시간

모란이 핀 시간

무슨 시간

어느 시간

세상 모두 숨 죽여

너도 없고 나도 없고

멀리 모란의 숨결이 불어오는 시간

무슨 시간

어느 시간

한밤중에 홀로

경련으로 몸이 출렁이는 시간

무슨 시간

어느 시간

뭐 이런 시간

뭐 이런 절벽

뭐 이런 벼락

죽을 수도 있는 시간

죽어가는 어떤 시간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숨을 죽이고

꿈틀거리는 심장 홀로

모란만 남는 그런 시간

모르는 숨결이 슬쩍 칼처럼 지나가는 시간

모르는 숨결이 슬쩍 칼처럼 들어오는 시간

무슨 시간

그런 시간

모란이 핀 시간

무슨 시간

그런 시간

망할 놈의

모란이 뚜욱 떨어지는 시간

 

      - 열린시학, 2021년 가을호 

 

 

 

 

 

 

* 한밤중에 홀로 죽어가는 시간.

영혼은 육체의 고통을 안타까워할까.

숨이 멈추는 순간을 괴로워할까.

코로나로 노인층이 모란꽃이 뚝뚝 떨어지듯 한다는데

망할 놈의 그 시간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승을 떠나갈까.

어디에도 이름 석자를 알리지 않고 생사를 알리지 않으며

그저 코로나 사망자 숫자중에 1을 차지하며 뚜욱 떨어지고 있을텐데

그게 무슨 시간, 어느 시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