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이규리]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 새끼를 부리에 넣어줄 때
한 마리씩 차례대로
새끼는 새끼대로
노란 주둥이를 찢어질 듯 벌리고 기다릴 때
그 외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노랑이나 목숨은
입구가 단단하여
절명이 그렇게 온다면
입을 벌리고 한 생각만 집중한 채
그렇다면 한 생을
정확하게 전달했는가
나는
-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2020
* 세계 인구가 78억. 등록되지 않은 인구까지 합치면 80억 인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엄청나게 먹어대고 엄청나게 소비를 해대니 바다에는 온갖 쓰레기로 가득하고
바이러스는 시시각각 진화하여 지구를 괴롭히고 있다.
전쟁과 더러운 공기와 자연재해와도 싸우기 힘든데 바이러스까지 창궐하니
한 생이 산다는 게 기적이라고 봐야겠다.
입 벌리고 있다고 누가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는 세상은 아니기에
입을 벌리고 있을 때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겠다.
어미 새는 얼마나 속이 탈 것이며
새끼 새는 얼마나 불안할 것인가.
없는 사람은 얼마나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고
자존심을 얼마나 구겨야 할 것인가.
미국 같은 선진국도 구호물품을 받으러 승용차를 몰고 와서 잔뜩 실어가는 모습인데
가난한 나라는 얼마나 더 어려울까.
하긴 우리나라도 벤츠 끌고와서 가난한 사람한테 주는 도시락을 두개나 받아갔다니
얼마나 자존심이 구겨지고 쪽이 팔렸을까, 싶다.
코로나가 모든 인간에게 '아무 생각도 없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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