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와 감상

길순심 여사의 장판법석 [박승민]

by joofe 2021. 12. 11.

길순심 여사의 장판법석 [박승민]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

 하는 족족 엎어지는 박복도 있는기라,

 그르이, 누군가의 업을 짊어지고 사는 기 한생이라.

 업이라고 생각하믄 몬 살지만 복이라 생각하믄 다 산다.

 지 놈이 딴 데 안 들러붙고 내한테 왔구나, 그래 생각하믄

또 살아진다

 내는 말이다 평생 앉아본 적이 없는 짐승이다.

 단풍놀이도 테레비에서 봤지, 송해 나오는 노래자랑도 식

당에서 설거지하며 귀로 봤다.

 원망은 무신 원망이 있겠노.

 그래 견디고 지나뿌면 다 잊히는 기라.

 천당이 어데 있노? 니는 있드나!

 그래도 태어난 고향은 한번 가보고 잡다.

 백사장이 털어논 흰깨처럼 이뻤지……

 탈북자들이 영주장(場)에도 온다 카드만,

 아이다, 그기도 욕심이다.

 내가 영감이 있나 자식이 있나, 그 생각 하다가도

 강아지들 보믄, 젖 떼면 다 뿔뿔이 흩어지는 기라.

 천하에 한 몸으로 남는 기라.

 이래 장판에 누워 있으믄 고향도 가보고 어매 아배도 만

나고 그게 좋지.

 꿈에서 만나는 게 좋지.

 아이고, 올핸 서릿골 단풍이 곱기도 하네……

 이제 니도 고만 집에 가라.

 내는 우리 어매 만나러 갈란다.

 

 

                     - 끝은 끝으로 이어진, 창비, 2020.

 

 

 

 

* 야단법석이란 들에 단을 놓고 석가의 설법을 전하는 자리였을 게다.
중생들이 설법을 들으면서도 을마나(?) 떠들었으면 시끌벅적을 야단법석이라 했을까.
길순심여사는 장판에 누워 누구랑 떠드는데 그게 곧 설법이고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인 것!
장판법석이라 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