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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적 [임희구]

by joofe 2021. 10. 3.

박항률 화가 그림

 

적 [임희구]

 

 

 

 

구원할 것도 없는 망망한 집에

단골인 집사님이 찾아왔다

책장의 책들을 뒤적인다

불교에 관한 책이 있냐고 묻는다

커피 한 잔 타드릴까요?

어제 전도하러 간 집에서 노스님을 만났단다

성경을 참 잘 알더란다

적을 알고 싸워야 적을 이길 수 있으니

불교서적 있으면 몇 권 빌려달란다

불교에 관해 뭘 좀 알고 얘기를 해야

스님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겠단다

모처럼 강적을 만났다는 듯

집사님 힘이 넘친다 커피 탈

맹물이 팔팔 끓는다

 

         - 소주 한 병이 공짜, 문학의전당, 2011

 

 

 

 

 

 

 

* 하룻강아지는 범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고 했나?

기독교를 믿는 집사님이 불교를 믿는 노스님을 이기려고 하다니.

귀여운 발상을 하고 있다.

다음에 어떤 세상으로 가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고

가르침은 사랑과 자비이니 종교란 그저 하나로 귀결되는 것인데

적,으로 규정하고 이겨보겠다는 결의가 팔팔 끓는 커핏물이라니.

한때 대학가를 중심으로 **교가 엄청 확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채플시간을 인도하는 어느 대학의 교수가 이단이라고 규정한 **교를 연구한답시고

교리를 공부하다가 빠져나갈 구멍 없는 완벽한 교리라면서 **교로 개종했단다.

적을 공부하니 적으로 건너간 셈이다.

무릇 각 종교의 교리는 사랑과 자비이니 비교할 것도 없고 적으로 볼 것도 아니다.

커피 마시고 돌아간 저 집사님, 불교로 귀의했을지도 모르겠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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