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치(拔齒) [이문재]
어머니라고 하면
너무 멀어 보이고
엄마 하면 버릇없어 보여서
입속으로 어무이
입안에서만 엄니
일찌감치 보험 들어놓고도
몇년 몇달을 뭉그적거리다가
죽염 양치로 버텨보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어금니 뽑으러 가는 날
평생 이 아파하시던
우리 어무이 생각
앞니까지 다 빠진 채로
홀로 저승 가셨는데 행여
저승에서도 잇몸으로 드시나
마취 풀리고 피 멈추고
부기 다 가라앉았는데도
나는 자꾸 내가 싫어져서
저무는 북서쪽 하늘 올려다 보면서
없는 어금니 꽉 깨물면서
엄니
- 혼자의 넓이, 창비, 2021
* 내 나이 스무살 때 나도 이젠 성인이 되었으니
어머니와 형에게 존대를 해야겠다 결심을 했다.
엄마, 이랬어 저랬어,하다가
어머니,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려니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는지.
형에게도 반말로 대화하다가 존대하는 순간부터
친구였던 형이 머나먼 형이 되었다.
이십년 말 놓다가 사십년 존대하며 살았더니
머나먼 어머니, 머나먼 형이 되었다.
물론 어머니는 십수년 전 틀니끼고 저승 가셨지만
사랑니 뺀 둘째 아들이 존대말 쓴 게 못마땅하셨을 것 같다.
엄마, 사랑니 네 개중에 아직 하나는 남았어.
이건 안 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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