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276 합창 [강성은] 합창 [강성은] 합창대회에 나갔다 관광버스를 타고 먼 도시로 갔다 하얀 블라우스와 빨간 스커트를 입고 목에는 나비넥타이 를 맸다 지휘자 선생님은 오지 않았다 선생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대신 오늘은 할아버지 교감 선생님이 지휘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휘자 선생님은 지금 슬픔에 잠겨 있다고 했다 우리가 선생님의 슬픔을 위로해주어야 한다고 꼭 상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선생님은 지금 울고 계시겠지 울고 있을 선생님을 생각하다가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리자 곧 모두가 흐느껴 울었다 우리는 나뭇잎 배를 불 렀다 선생님을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울음이 그치 지 않았다 노래하며 울며 토했다 너무 슬펐기 때문인지 멀 미를 한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상을 받지 못했고 돌 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울었다 울다가.. 2022. 5. 28. 빗장 [이은규] 빗장 [이은규] 문을 활짝 여시오 꼭 닫으시오 문을 마음이라는 무한한 원을 어떻게 열고 닫을까 빗장뼈의 어원은 작은 열쇠 무른 태아에게서 가장 먼저 솟아나 어른이 될 때까지 점점 단단해진다는 뼈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기억처럼 멀리서 가까이서 누군가의 목소리 마음의 빗장을 열어라 닫아라 세상 모든 빗장이 열리는 절기, 봄 만화방창 만화방창 열어라 닫아라 기억의 빗장을 어떤 포옹은 꽃그늘 아래서의 전쟁 보이는 분홍과 안 보이는 분홍을 다투는 사이 문장이 되기 전 흩어져버릴 숨결들을 뼈에 새기다, 꽃잎처럼 무르고 단단한 문득 한 사람이 꽃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했을까 다만 한 사람이 아름다운 꽃들에 대해 말했을까 우리 이제 하나의 이름으로 묶일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으며 믿지 않으며 순리대로, 네 음.. 2022. 5. 28. 닮 [윤의섭] 닮 [윤의섭] 어느 화랑에 걸린 우울한 초상을 닮은 달 지는 햇살에 눈을 찡그린 오래된 사진의 표정을 닮은 달 몇 년 전에 똑같은 얘기를 나눈 것 같았는데 이 카페는 오늘 처음 와 본 곳이다 마주 보고 앉았지만 마주 대한 건 내심이었다 창밖으로 문득 내 뒷모습이 지나간 듯했다 우리는 지나온 날의 모든 순간을 닮아 있다고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 과연 공포를 닮았다는 건가 테이블마다 놓인 냅킨 한결같은 메뉴 모태가 같은 머그 컵 모두 비슷하길 마다하지 않는데 다르다면 처음부터 달랐다면 이란성 달이었을 것이다 서로 따로 바라보고 있는 착각 의 달 아이스크림엔 소금도 들어간대요 더 달라고 정말 달아져요 정반대 맛인데 단맛을 닮은 거겠죠 완벽히 달라야 닮아 갈 게 많은 거니까 커피에 비친 두 개의 달을 한 모.. 2022. 5. 28. 나의 거룩 [문성해] 나의 거룩 [문성해] 이 다섯 평의 방 안에서 콧바람을 일으키며 갈비뼈를 긁어 대며 자는 어린 것들을 보니 생활이 내게로 와서 벽을 이루고 지붕을 이루고 사는 것이 조금은 대견해 보인다 태풍 때면 유리창을 다 쏟아 낼 듯 흔들리는 어수룩한 허공에 창문을 내고 변기를 들이고 방속으로 쐐애 쐐애 흘려 넣을 형광등 빛이 있다는 것과 아침이면 학교로 도서관으로 사마귀 새끼들처럼 대가리를 쳐들며 흩어졌다가 저녁이면 시든 배추처럼 되돌아오는 식구들이 있다는 것도 거룩하다 내 몸이 자꾸만 왜소해지는 대신 어린 몸이 둥싯둥싯 부푸는 것과 바닥날 듯 바닥날 듯 되살아나는 통장잔고도 신기하다 몇 달씩이나 남의 책을 뻔뻔스레 빌릴 수 있는 시립도서관과 두 마리에 칠천원 하는 세네갈 갈치를 구입할 수 있는 오렌지마트가 가까이.. 2022. 5. 27.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6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