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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성이 강한 병에 대한 처방전 [신미균] 전염성이 강한 병에 대한 처방전 [신미균] 내가 뱉은 공기를 네가 마시고 네가 뱉은 공기를 그가 마시고 그가 뱉은 공기를 가위꼬리딱새가 마시고 가위꼬리딱새가 뱉은 공기를 푸른점박이비단능구렁이가 마시고 푸른점박이비단능구렁이가 뱉은 공기를 껄떼기가 마시고 껄떼기가 뱉은 공기를 모쟁이가 마시고 모쟁이가 뱉은 공기를 마시면 안 됨 아무도 마시지 않았던 공기를 마셔야 함 *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온세상이 난리다. 메르스나 사스 때에도 마스크가 품귀가 아니었고 그냥 일반 독감으로 인식했었는데 이번 신종은 독해도 아주 독한 전염성이 강한 병이다. 농어의 새끼가 껄데기이고 숭어의 새끼가 모쟁이인데 그 어린 것들까지 병에 걸려 그 공기조차 마시지 말아야함,은 세상이 너무 좁아지고 복닥거린다는 말이다. 어제 우한.. 2022. 5. 5.
탤런트 김미숙 씨 [이상문] 탤런트 김미숙 씨 [이상문] 탤런트 김미숙 씨와 함께하는 저녁은 얼마나 행복한가 오후 6시에서 8시 사이 그녀가 만들어주는 두 시간에 라면에 찬밥을 말아 먹어도 즐거운 것은 배우라서가 아니라 나이 드는 것도 숨기지 않는 은근슬쩍 퍼져버린 그녀의 엉덩이처럼 온전히 인간적이고 싶은 시간을 조근조근 들려주며 음악으로 묻혀내는 사람의 향기 때문이다 규율에서 자유로의 시간 직선에서 곡선으로의 시간 은유에서 직유로의 시간 이성에서 감성으로의 시간 의식에서 무의식의 시간 비가 내리고 낙엽이 지고 눈이 퍼붓고 꽃이 피고 구름이 슬쩍 우울을 드리우는 날에도 그 모든 것들이 되어주는 그녀를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를 위해 고구마를 구워야 할 것 같은 시간 불을 켜놓고 찌개를 끓여야 할 것 같은 시간 책상을 깨끗하게 정리해줘야.. 2022. 5. 5.
너는 생필품 [서정학] 너는 생필품 [서정학] 감자 두 개와 한 줌의 쌀, 파 한 쪽이면 하루가 저 물었다. 계란 한 개에는 달콤한 너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고 하루 치의 전기 요금은 운동장 한 바퀴를 땀 나게 뛰는 것으로 충분했다. 가끔식 비가 내렸고 바 람이 불었지만 쓰레기는 목요일 저녁 늦게나 치워졌 다. 발정 난 고양이들이 울어대는 화요일 골목에 가 로등이 켜지고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들이 엉켜 붉 고 뜨거운 배기가스를 뿜었다. 너의 손에 든 비닐봉 지가 부스럭거렸다. 젓가락 한 짝을 떨어뜨리자 우 유와 식빵 한 조각, 고기 한 근과 지루하기만 한 버 섯이 하루를 삼켰다. 월요일 아침은 떠들고 일요일 저녁은 조용했다. 화장실에 앉아 떨어지는 수요일을 보며 질 낮은 두루마리 휴지를 풀었다. 걱정은 조미 료처럼 달콤하고 텔레.. 2022. 5. 5.
안목을 사랑한다면 [심재휘] 안목을 사랑한다면 [심재휘] 해변을 겉옷처럼 두르고 냄새나는 부두는 품에 안고 남대천 물을 다독여 바다로 들여보내는 안목은 한 몸 다정했다 걸어서 부두에 이른 사람이나 선창에 배를 묶고 뱃일을 마친 사람이나 안목의 저녁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람의 방향은 밤과 낮이 달랐다 그때마다 묶인 배는 갸웃거리기만 했다 모든 질문에 다 답이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가 물이 끝나는 곳인가 물으면 그저 불을 켜서 저녁을 보여주는 안목 묻는 건 사람의 몫이고 밤바다로 떠나가는 배를 보여주기만 하는 안목 우리가 삶을 사랑한다면 안목에게 묻지를 말아야지 불 켜진 안목을 사랑한다면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잊지는 말아야지 -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창비, 2022 * 어떻게 살 것인가? 한참 고민하던 때는.. 2022.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