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78 육탁 [배한봉] 육탁 [배한봉]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 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 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 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 늘 열려 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 록.. 2022. 6. 28. 카페 아데초이Salon de the A'de Choi [최삼용] 카페 아데초이Salon de the A'de Choi [최삼용] 향기를 위하여 커피가 있고 휴식을 위하여 쉼터가 있어야 한다면 오세요 분위기는 좋지만 그대들 사이만큼 좋지 않고 커피는 뜨겁지만 그대들 사랑만큼 뜨겁지는 않을게요 파스텔 톤이지만 차가운 파랑과 정열의 빨강이 대비색이지만 묘하게 어울리고 세월이 눌러앉은 먼지 낀 음악 앞에서 갯바람 버무린 빵과 진한 커피가 익고 있어요 그러나 커피 향이 빵 냄새보다 좋고 입구를 지키는 꽃향기보다 갯내가 좋다면 샹들리에 불빛이 당돌하게 투신하는 여기 오선지에 올리지 못한 파도의 음표 몇 개쯤 걷어 1분 동안 33과 3분의 1회전 하는 턴테이블에 얹어두고 음악보다 더 음악 같은 해조음에 귀를 열게요 아! 분위기에 취하는 이 심미적 황홀! - 그날 만난 봄 바다, .. 2022. 6. 26. 이 숟가락으로는 [나희덕] 이 숟가락으로는 [나희덕] 그는 나무로 무엇이든 만든다 나무의 결과 무늬, 그 속에 깃든 형상에 따라 그가 만든 숟가락들은 말한다 세상의 모든 나무는 멋진 숟가락이 될 수 있다고 곧으면 곧은 대로 굽으면 굽은 대로 부서지고 불 탄 흔적이 있어도 버리지 않는다 손끝으로 집어야 할 만큼 짧은 숟가락도 있고 너무 길어서 다른 이에게만 떠먹일 수 있는 숟가락도 있다 작고 오목한 면만 있으면 숟가락이 된다 입에 들어갈 무언가를 한 술 담을 수만 있다면 물이든 밥알이든 푸성귀든 국물이든 고기 건더기든 목숨을 위해 무엇이든 실어나르는 도구 밥그릇을 빼앗고 숟가락을 분지르는 사람들을 보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버려진 나무로 숟가락을 깎는 일이었다 숟가락 싸움 밥그릇 싸움 앞에서 그는 묵묵히 숟가락을 만들었다 스테인레.. 2022. 6. 26. 스산 감자 [구수영] 스산 감자 [구수영] 서산 사는 지인에게 감자 한 상자를 주문했더니 스산 감자가 왔다 스산 스산 몇 번이고 말하는데 입에 착착 감기는 스산 감자 지난해 오월이었던가 그녀 음니 부고를 받고 갔던 스산, 마애 삼존불상이 얼뜨기 천주교 신자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삼거리 까막 치마저고리에 화장기 없는 그녀 나는 이제 고아가 되었네 나는 이제 고아가 되었어 하얀 감자꽃 꽃 내 은은하던 오월이었다 스산 감자 몇 개 꺼내 삶는다 가장 순도 높은 온도에서 마침내 몸을 터트려 적멸에 든 하지감자 포실포실한 속살에 굵은 소금을 살작 찍으면 그 찰진 식감이 가슴 아린 - 흙의 연대기, 실천, 2021 * 서산이라고 쓰고 스산이라고 발음하는 것 같다. 스산 스산... 대개 학암포를 가거나 천리포수목원을 갈때는 서산을 지나.. 2022. 6. 24. 이전 1 ··· 4 5 6 7 8 9 10 ··· 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