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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하쿠나 마타타 [여태천]

by joofe 2021. 12. 30.

 

 

하쿠나 마타타 [여태천]

 

 

 

 

어느 날 문득, 옆집 사는 사람이

손을 잡고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어느 날 문득,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사람이

스와힐리어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어느 날 문득, 뉴스 진행자가

화면 밖으로 기어 나와 고해성사를 하는 것처럼

 

하나마나한 소리로

어느 날 문득

외계 생물체가 되어

 

지구에 도착해

부패한 정치에 분통을 터뜨리며

명절날 전을 부치며

허구한 날 빈속에다 뭔가를 쑤셔 넣으며

이게 다는 아니겠지 그럴 수가 있나, 하고 반복하며

돌아갈 날을 기다리지

 

하염없이

방아를 찧고 또 찧고

그 힘으로 우주가 돌아가는 거라며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어느 날 문득

외계 생물체로 남아

생을 마감하지

눈 내리는 산과 비온 뒤 돋는 들판의 풀들을 보지도 못하고

 

슬픔의 소화기관처럼

이웃도 가족도 잊은 채

우리가 외계 생물체이므로

 

생각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어느 날 문득

외계 생물체가 되지

 

* Hakuna Matata는 스와힐리어로 '문제 없다'란 뜻이다.

 

           - 감히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민음사, 2020

 

 

 

 

 

 

 

* 자연의 한 현상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그렇다고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를 자연이 치유시켜 주지는 않는다.

자연은 자연의 일을 할 뿐이다.

친구에게서 반년만에 온 전화를 받고 우리는 무심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구나, 싶다.

아니 잠시 지구가 아닌 외계의 혼자만의 장소에서 지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지나간다 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또 코로나의 변종이 나타난다면

또다시 외계인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코로나 이전에 누렸던 자유와 평화를 기억하며 참 좋은 세상을 살았구나, 감탄하며

지금의 답답한 세상도 그저 견딜만 하구나 생각하면서

하쿠나 마타타! 하쿠나 마타타! 어깨 한 번 으쓱해보는 것은 어떠한가.

잘 될 거야. 다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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