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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박주하]

by joofe 2022. 2. 26.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박주하]

 

 

 

 

작은 새의 발가락이 점점 가늘어진다

 

적막한 식욕으로 어딘가를 다녀오는 꿈

어딘가를 다녀오는 생각들

 

서랍 속에는 투명한 망설임으로 가득하다

 

아주 먼 곳을 꿈꾸는 새를 위하여

투명은 침묵의 푸른 빛을 풀어 준다

 

파도 끝에서 새는 솟아오르고

새는 단 한 번 푸르러진다

 

투명의 자취를 지운 허공으로

 

울음밖에 배운 게 없는 텅 빈 마음이

차디찬 입술을 들고 산다

 

고요에 몸을 씻은 새가

투명한 의자에 투명하게 앉아 있다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해서

마음을 만들지 않는 새의 세계

 

머무를 까닭을 버린 새는 

칠흑의 밤을 날아 오른다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려고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더 깊이 어두워지는 맨발

 

       - 시와편견, 2021 겨울호

 

 

 

 

 

 

 

* 계절 탓일까, 나이 탓일까.

밤새 무슨 꿈인가를 꾸면서 새처럼 날아다니지만 

눈뜨면 도대체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꿈을 꾸었다는 것만 알고 백지상태가 된다.

작은 새의 발가락이 점점 가늘어진다니 나는 내 종아리와 허벅지를 만져보게 된다.

오년 전쯤 운동하다가 오른쪽 다리, 십자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받았었다.

하체는 마취가 되었지만 눈과 귀는 마취상태가 아니었는데

의사가 '어휴, 종아리와 허벅지가 튼실하시네요. 운동 자주 하시나봐요.'

원 참, 별걸 다 칭찬을 듣네 했는데 사실 수술 후 심한 운동은 할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근육이 줄고 있다.

점점 가늘어지면 새 다리가 되어 두 다리 쭉 뻗고 날아다니는 꿈을 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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