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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알레비오 관측소 [조용미]

by joofe 2022. 2. 22.

 

 

 

알레비오 관측소 [조용미]

 

 

 

 

  알레비오 관측소에 가서 별을 보고 싶은 두통이 심한

밤이다

 

  거문고자리의 별을 이어보면 이상하게도 물고기가 나

타나는 것처럼

  지금의 나를 지난 시간의 어느 때와 이어보면 내가 아

닌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그걸 보려면 더 멀리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게 멀리 갔다 되돌아와도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지금은 단지 고열에 시달리고 있고 생의 확고부동과

지루함에 몸져누웠을 뿐이다

 

  입술이 갈라 터진 것뿐인데 아는 말을 반쯤 잃어버린

것 같다

 

  아무래도 좀더 먼 곳에서, 거문고자리의 물고기를 발

견하듯 이 두통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일치하기 힘든 몸이고 살이다

  알레비오 관측소까지 가야만 하는 고단한 생이다

 

  아주 멀지는 않다, 두어 번 더 입술이 터지고 신열을

앓다 봄의 꽃잎처럼 아주 가벼워지면 될 것을

 

  몸이 돌이킬 수 없는 어떤 다른 자리로 가버릴 수도

있다

  살이 기억을 야금야금 잡아먹는다

 

  나는 여기서 지난 슬픔을 예견하고 다가올 사건을 복

기해보며 내게 주어진 고통과 대면하겠다

 

  모든 통증은 제각기 고유하다 백조가 물 위를 날아가

듯 천천히 여기, 이 자리에서 회복되고 싶다

 

        - 당신의 아름다움, 문학과지성사, 2020

 

 

 

 

 

* 어렸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아으, 속상해! 하며 내 손을 꼭 잡고 시장통에 가셨다.

순대 한 접시.

나는 별로 맛을 알 수 없는데 어머니는 속이 상한 속에 순대를 밀어넣으셨다.

쫄깃한 순대를 잘근잘근 씹어서.

어머니가 상한 속을 다스리는 방식이었다.

굳이 고단하게 알레비오 관측소를 갈 필요 없이 시장통에서 순대 한 접시에

백조가 물위를 날아가듯 회복하셨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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