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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대성당 [신용목]

by joofe 2022. 3. 5.

남양성지, 재작년에 신축할 때 열번은 가보았던 곳. 올봄에 가서 서 있어야겠다.

 

 

 

대성당 [신용목]

 

 

 

 

  서 있다.

 

  곧 종소리가 날아올 것이다.

  손 흔들려고,

  미리 끊어둔 표가 있는 것처럼 네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

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장미꽃처럼 해가 진다.

  서 있다.

 

  장미넝쿨처럼 노을이 

  번지고, 곧 종소리가 날아올 것이다. 내 몸속에, 뭉쳐진 가

시들이 붉게 켜지면······

  이런 고백.

  핏줄은 바람에 뽑혀 나뒹굴다 외진 웅덩이에 빠져버린 장

미넝쿨처럼

  몸속에 던져져 있다, 어쩌면 종소리처럼. 아직 떨어지지 

않은 장미꽃처럼

  심장은 박혀 있다. 어쩌면 종처럼,

 

  서 있을게.

 

  장미 다발을 건네며······

  시간이 길을 잃어버린 곳에서 그날의 우리는 추억이라는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겠지.

  술병을 쓰러뜨리며,

 

  여기는 스무 살 같아. 같이 살지 않아도 괜찮아,

  스무 살인 곳에선.

 

  말한다.

  종소리보다 크게 그리는 화가는 없는데, 성당 천장에 그

려진 장미 넝쿨은 좀 달라서 

  한번 일어났던 일이 마음 속에서 다시 일어나고 또 일어나

고 일어나고······

 

  어떤 고백은 한 적도 없는데 끝난 적도 없다.

  서 있으면

 

  종소리가 날아와 내 몸속에서 나를 건져간다.

 

                -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 문학동네, 2021

 

 

 

 

 

* 유럽 대륙에는 어딜 가나 대성당이 있고 성당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다.

광장 끝에서 반대편의 대성당을 바라보면 성당은 늘 우뚝 서 있는 것 같다.

대성당은 늘 그곳에 서 있고 나는 움직이며, 서 있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한다.

때로는 부끄러운 스무살이 되기도 하겠지.

성당이 늘 그곳에 서있다는 것은 나의 중심이 되어준다는 것이고

나도 성당처럼 서 있다는 것일 게다.

내가 서 있을 때에는 성당이 중심처럼 내 안에 있다는 것이지만 늘 서 있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종소리가 일깨워 주는 건 그래서일 게다.

많은 이들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던 대성당이 늘 우뚝 서 있기를 바라고

그 기도가 누군가에게 종소리처럼 들려지길 소망하며 그 누군가들이 서 있는 사람들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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