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와 감상

불멸의 동명극장 [심재휘]

by joofe 2022. 3. 1.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문희와 김정훈. 정훈은 나와 동갑이다.

 

 

불멸의 동명극장 [심재휘]

 

 

 

 

글자를 배우기 전에 우리는 동명극장을 먼저 배웠지요

그러니까 극장 이름이 동명이 아니고요

나직하게 소리 내 부르면 나타나는 그 동명극장이요

 

택시부를 지나 양조장을 지나 천변이고요

글자도 아니어서 받아 적을 수 없는 그 동명극장이요

나지막하게 동명극장을 부르면 일곱살 몸이 되었다가

열다섯 몸도 되었다가

 

열아홉살 몸은 대관령을 넘고

또 넘지 못할 고개도 없이 살았는데요

오래 전에 폐업했다는 동명극장은요

부르지 않아도 이미 소리가 되는 그곳은요

동명도 아니고 극장도 아닌 불멸의 동명극장이에요

그냥 몸이 없는 몸이에요 내 곁인데 갈 수는 없어요

 

          -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창비, 2022

 

 

 

 

 

 

* 어릴 때 우리집은 만화가게 겸 편의점이었다.

문에는 대동극장의 영화포스터가 붙여졌고 붙이는 대가로 초대권 두 장을 받았다.

덕분에 엄마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자주 갔었다.

형의 어깨 너머로 한글을 깨우쳤던 나는 입학 전에 일기(?)를 썼다.

일기라는 것이 영화를 보고 제목과 주연 배우의 이름을 써두는 것이었다.

김승호 장동휘 문희 김희라 신영균 김진규 엄앵란 등등.

지금은 그 극장이 없어진지 오래 되었지만 찌직거리는 화면은 아직도 기억나고

가끔은 정전이 되기도 했던 오래된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나에게는 영화와 만화가 주는 감동이 지금의 감성을 만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남들은 돈 내고 보는 영화와 만화를 나는 값없이 실컷 읽고 보았으니 엄청 행운이 따른 셈이다.

동네에 텔레비젼이 없는 집들은 우리 가게에 와서 김일의 레슬링, 유제두의 복싱, 장욱제의 여로를 시청하곤 했다.

타이거 마스크, 우주소년 아톰, 요괴인간, 황금박쥐 등등의 만화영화도 참 재미있었는데......

불멸의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성당 [신용목]  (0) 2022.03.05
테이블 [조용미]  (0) 2022.03.01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이어령]  (0) 2022.02.27
하시시 [안현미]  (0) 2022.02.26
무갑사 바람꽃 [류병구]  (0) 2022.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