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신용목]
서 있다.
곧 종소리가 날아올 것이다.
손 흔들려고,
미리 끊어둔 표가 있는 것처럼 네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
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장미꽃처럼 해가 진다.
서 있다.
장미넝쿨처럼 노을이
번지고, 곧 종소리가 날아올 것이다. 내 몸속에, 뭉쳐진 가
시들이 붉게 켜지면······
이런 고백.
핏줄은 바람에 뽑혀 나뒹굴다 외진 웅덩이에 빠져버린 장
미넝쿨처럼
몸속에 던져져 있다, 어쩌면 종소리처럼. 아직 떨어지지
않은 장미꽃처럼
심장은 박혀 있다. 어쩌면 종처럼,
서 있을게.
장미 다발을 건네며······
시간이 길을 잃어버린 곳에서 그날의 우리는 추억이라는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겠지.
술병을 쓰러뜨리며,
여기는 스무 살 같아. 같이 살지 않아도 괜찮아,
스무 살인 곳에선.
말한다.
종소리보다 크게 그리는 화가는 없는데, 성당 천장에 그
려진 장미 넝쿨은 좀 달라서
한번 일어났던 일이 마음 속에서 다시 일어나고 또 일어나
고 일어나고······
어떤 고백은 한 적도 없는데 끝난 적도 없다.
서 있으면
종소리가 날아와 내 몸속에서 나를 건져간다.
-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 문학동네, 2021
* 유럽 대륙에는 어딜 가나 대성당이 있고 성당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다.
광장 끝에서 반대편의 대성당을 바라보면 성당은 늘 우뚝 서 있는 것 같다.
대성당은 늘 그곳에 서 있고 나는 움직이며, 서 있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한다.
때로는 부끄러운 스무살이 되기도 하겠지.
성당이 늘 그곳에 서있다는 것은 나의 중심이 되어준다는 것이고
나도 성당처럼 서 있다는 것일 게다.
내가 서 있을 때에는 성당이 중심처럼 내 안에 있다는 것이지만 늘 서 있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종소리가 일깨워 주는 건 그래서일 게다.
많은 이들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던 대성당이 늘 우뚝 서 있기를 바라고
그 기도가 누군가에게 종소리처럼 들려지길 소망하며 그 누군가들이 서 있는 사람들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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