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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대니 보이 [박은정]

by joofe 2022. 4. 25.

아일리시, Enya

                                                                                                     

 

 

 

 

 

 

 

대니 보이 [박은정]

 

 


 

 

 

우박이 내렸다

늑대의 얼굴을 그릴 때마다

모르는 당신의 얼굴이 겹쳐졌다

자신의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

내게 어울리는 장소를 갖고 싶을 뿐이야

가령 슬픈 모두에게 밤인사를 할 수 있는 곳

나는 전기뱀장어처럼 이생의 상처를 사랑하지

이곳에선 누구든지 절망할 수 있단다

기억 속 뒤축을 버리고 잠복한 음악

오늘을 지나던 행인의 이름을 아일랜드라고 부른다

그의 이름은 먼 곳에 있는자

풍금을 연주하던 동무들은 떠나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병에 든 유서 따윈 밀려오지 않는 곳

파도의 적막을 견딘 새들의 이명을 아일랜드라 부른다

새벽 세시의 자흔이 깊어진다

눈을 감고 피던 자목련과

창을 뛰어넘던 시선들

오직 순정한 혼혈의 자세로

한 방향으로만 울던 몸의 흔적을 아일랜드라 부른다

누구도 내게 고향을 묻지 않았다

어제 죽은 두꺼비가 살고

죽은 듯 꼼짝하지 않던 기억들이

두꺼비처럼 까만 배를 불리던 곳

그날의 바람이 어디서 불어왔는지

난폭하게 익어가는 과실은 푸르고

저녁내 울던 새의 동공 속

대니 보이가 있었다 

 

                    -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 문학동네, 2015

 

 

 

 

 

 

 

* 십오년 전 용인에 있는 어학원에서 두달 정도 영어를 배웠다.

밥(Bob)이라는 아일리시가 한 과목을 맡았고 매일 영어일기를 교정해주는 선생이었다.

영어선생은 이스라엘계, 이탈리아계, 영국계등등 각자 억양이 다른 편이었다.

밥은 그늘진 얼굴이긴 했지만 정성껏 일기검사와 빨간펜 교정을 해주었다.

보통 저녁시간이 끝나고는 책걸이 하듯 회식을 하는데

2차로 맥주집을 갔다.

다른 테이블에 혼자 맥주를 마시는 여인이 있었는데

갑자기 밥이 아일리시?하고 물어본다.

그 여인이 너두?라고 물어본다.

아하, 아일리시는 아일리시를 알아본다.

 

대니보이는 아일랜드 노래였지만 영국에 편입되면서

영국노래가 되었다.

그래서 아일랜드인들은 대니보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사람들도 이 노래를 잉글랜드노래로 알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일리시들은 슬프고 절망적이고 적막이고 그렇다.

고향을 묻지 않는 슬픈 아일리시!

 (아일랜드는 독립했지만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이다. 안물? 안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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